"신청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의미)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파일:신청년.jpg|왼쪽|200픽셀]] | ||
==개요== | ==개요== | ||
− | |||
1915년 9월에 진독수 등이 창간한 잡지로서, 창간호 당시의 이름은 '청년잡지'였으나, 1916년 2건부터 '신청년'으로 개칭했다. | 1915년 9월에 진독수 등이 창간한 잡지로서, 창간호 당시의 이름은 '청년잡지'였으나, 1916년 2건부터 '신청년'으로 개칭했다. | ||
+ | ==의의== | ||
진독수, 전현동, 호적, 이대조, 노신 등이 편집인으로 참여한 이 잡지는, 1920년대까지 언론계에 영향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잡지의 기조는 '민주'와 '과학'에 바탕을 둔 중국 사회의 혁신, 구사회의 폐단 타파 등이었다. [[신청년]]은 유교를 비롯한 전통 도덕을 비판하고, 그에 입각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문장과 구어(口語) 문학을 제창한 [[후스]](胡適, 1891~1962)의 논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구어 문학을 체현하고 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나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루쉰]]의 작품을 게재하여 중국 사회의 개혁을 지향하는 [[신문화운동]]의 장이 되었다. 후에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후에는 마르크수주의 선전에 앞장섰다. | 진독수, 전현동, 호적, 이대조, 노신 등이 편집인으로 참여한 이 잡지는, 1920년대까지 언론계에 영향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잡지의 기조는 '민주'와 '과학'에 바탕을 둔 중국 사회의 혁신, 구사회의 폐단 타파 등이었다. [[신청년]]은 유교를 비롯한 전통 도덕을 비판하고, 그에 입각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문장과 구어(口語) 문학을 제창한 [[후스]](胡適, 1891~1962)의 논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구어 문학을 체현하고 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나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루쉰]]의 작품을 게재하여 중국 사회의 개혁을 지향하는 [[신문화운동]]의 장이 되었다. 후에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후에는 마르크수주의 선전에 앞장섰다. |
2018년 12월 26일 (수) 20:25 판
개요
1915년 9월에 진독수 등이 창간한 잡지로서, 창간호 당시의 이름은 '청년잡지'였으나, 1916년 2건부터 '신청년'으로 개칭했다.
의의
진독수, 전현동, 호적, 이대조, 노신 등이 편집인으로 참여한 이 잡지는, 1920년대까지 언론계에 영향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잡지의 기조는 '민주'와 '과학'에 바탕을 둔 중국 사회의 혁신, 구사회의 폐단 타파 등이었다. 신청년은 유교를 비롯한 전통 도덕을 비판하고, 그에 입각해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문장과 구어(口語) 문학을 제창한 후스(胡適, 1891~1962)의 논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구어 문학을 체현하고 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나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루쉰의 작품을 게재하여 중국 사회의 개혁을 지향하는 신문화운동의 장이 되었다. 후에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후에는 마르크수주의 선전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