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제국주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서양의 충격-중국의 반응폴.A 코헨, 『학문의 제국주의』, pp. 102~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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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60년대 미국인들은 '서양의 충격'과 '중국의 반응'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19, 20세기 능동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양이며, 중국은 단지 반응적이거나(reactive)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는 관점이다. 특히 이러한 접근법을 대변하는 학자가 존 킹 페어뱅크(John K. Fairbank)로 그는 1954년 『서양에 대한 중국의 반응 China's Response to the West』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중국의 변화는 어느 부분 서양의 충격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 자신의 여러 가지 내부 요인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페어뱅크는 전자만을 강조한다. 또한 19세기 중국에서 서양과 아무런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측면들을 단순히 '두르러질 정도의 관성'이라는 말로 일소시켜 버리고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여전히 교과서 등에 잔존해있다. 다시 말하지만, 코헨은 충경-반응 접근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뉴턴의 예를 드는데, 과학이 발전하고 그의 법칙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법칙이 한정된 범위에만 적용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청나라 말기 역사의 모든 것은 충격-반응 접근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 1950, 60년대 미국인들은 '서양의 충격'과 '중국의 반응'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19, 20세기 능동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양이며, 중국은 단지 반응적이거나(reactive)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는 관점이다. 특히 이러한 접근법을 대변하는 학자가 존 킹 페어뱅크(John K. Fairbank)로 그는 1954년 『서양에 대한 중국의 반응 China's Response to the West』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중국의 변화는 어느 부분 서양의 충격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 자신의 여러 가지 내부 요인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페어뱅크는 전자만을 강조한다. 또한 19세기 중국에서 서양과 아무런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측면들을 단순히 '두르러질 정도의 관성'이라는 말로 일소시켜 버리고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여전히 교과서 등에 잔존해있다. 다시 말하지만, 코헨은 충경-반응 접근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뉴턴의 예를 드는데, 과학이 발전하고 그의 법칙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법칙이 한정된 범위에만 적용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청나라 말기 역사의 모든 것은 충격-반응 접근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 ||
− | ===충경-반응 접근법의 이론적 문제=== | + | ====충경-반응 접근법의 이론적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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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한계== | ==비판과 한계== |
2019년 1월 18일 (금) 17:27 판
목차
개요
학문의 제국주의는 웰즐리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이자 하버드 대학교 페어뱅크 센터 연구위원인 폴,A코헨이 지은 책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중국역사학계가 중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그는 1980년대 『학문의 제국주의(Discovering History In China)』를 저술한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주류였던 접근법은 (그가 지적하기로) 총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충격-반응 접근법. 두 번째는 근대화(전통-근대)접근법, 세 번째는 제국주의(제국주의와 혁명) 접근법이다. 그는 이를 서구중심적인 편견으로 바라보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해 '중국 자신에 입각한(China-centered) 접근법'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였다. '중국 자신에 입각한(China-centered) 접근법'의 특징은 서구 역사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기대(즉, 근대화나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보다는 중국의 역사적 궤적과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에 더 긴밀한 관심을 기울이는 접근법으로, 중국사 자체의 맥락에서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는 접근법이다. [1]
애초에 코헨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저술한 도서이기 때문에 읽기가 만만하지 않다. 중국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이 있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사 연구의 쟁점과 과제[2]
2차대전 이전 시기 미국의 중국사 연구는 서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들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 의화단운동, 조계지의 생활이나 제도 등이 그러하였다. 이들은 근대적인것이 곧 서양적인 것이라 보았고, 서양적인 것은 중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어 사료를 읽을 능력이 없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중국 현지에서 연구를 하던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고 중국 연구가 비로소 학문으로서의 특을 갖추게 되었다. 중국어 교육이 개선되었으며 중문으로된 1차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중국 근현대사의 틀을 결정하는데 있어 서양이 침입이 수행한 역할을 압도적으로 강조하였다. 특히 이 시기 주요 쟁점은 1. 서양의 중격과 중국의 반응 과 2.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사회에 가해진 근대화의 충격이었다.
60년대에 이르러 위에 충격-반응 접근법과 근대화 접근법은 비판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서양의 역할을 과장한다는 것이 아닌 서양에 대한 중국인의 저항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양의 제국주의가 중국의 발전에 끼친 부정적이고 방해적인 효과를 분명히 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아편전쟁, 의화단운동 등에 대해 재검토를 실시하였으며 중국의 역사가 본래 걸었어야 할 역사를 어떻게 제국주의가 방해하고 왜곡하였는가를 보려고 하였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결코 코헨은 여러 접근법들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이러한 개념들을 '범위를 한정짓지 않고' 모든 것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하는데 반대하는 것이다. 또한 서양의 의의가 사소하다거나 실제 중국에서 수행한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점은 서양의 중요성을 미리 결정한 뒤 이후 그 중요성을 말하는 연구태도와 서양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부분이다.
코헨은 위 세 가지 접근법은 서로 다르지만 중국 근현대사 인식 속에 서양중심적인 왜국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본다.
- 충격-반응 접근법
19세기 20세기에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에 서양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충격-반응 접근법은 그러한 사건들 조차 마치 서양의 반응이었던 것처럼 해석을 조장한다. 혹은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서양에 대한 중국의 반응 양식을 부각시키는 경우에 있어서만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 근대화 접근법
이 접근법은 19세기의 시각을 계승한 접근법으로 서양의 제한된 경험에 근거하여 중국사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접근법이다. 중국 역사 자체에서 유래하는 물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서양의 근대 과학이나 산업혁명을 중국이 이룰 수 없었던 이유에 관한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은 '서양 근대의 역사야 말로 당연하고 필연적인 역사'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 제국주의론 접근법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은 죄책감과 함께 새로운 눈으로 제국주의를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제국주의야 말로 과거 몇 세기 거쳐 중국과 기타 아시아국가들이 맛본 고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미국이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명제가 신화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접근법은 중국의 역사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발전경로를 걷고 있는데 서양 제국주의가 중국이 걷게 될 발전 경로를 방해했다는 함정에 빠진다. 이러한 접근법은 중국이 19-20세기 당했던 일들의 원흉으로 서양을 지목하고 서양을 유해한 존재로 본다.
시기 접근법(쟁점) 비판 2차 대전 이후 충격-반응 접근법 2차 대전 이후 근대화 접근법 1960년대 제국주의와 관련된 접근법
미국학계의 접근법
서양의 충격-중국의 반응[3]
1950, 60년대 미국인들은 '서양의 충격'과 '중국의 반응'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중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19, 20세기 능동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서양이며, 중국은 단지 반응적이거나(reactive)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는 관점이다. 특히 이러한 접근법을 대변하는 학자가 존 킹 페어뱅크(John K. Fairbank)로 그는 1954년 『서양에 대한 중국의 반응 China's Response to the West』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중국의 변화는 어느 부분 서양의 충격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 자신의 여러 가지 내부 요인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페어뱅크는 전자만을 강조한다. 또한 19세기 중국에서 서양과 아무런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측면들을 단순히 '두르러질 정도의 관성'이라는 말로 일소시켜 버리고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여전히 교과서 등에 잔존해있다. 다시 말하지만, 코헨은 충경-반응 접근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뉴턴의 예를 드는데, 과학이 발전하고 그의 법칙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법칙이 한정된 범위에만 적용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청나라 말기 역사의 모든 것은 충격-반응 접근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충경-반응 접근법의 이론적 문제
전통과 근대성
제국주의와 혁명
비판과 한계
비판
물론, 폴 코헨의 관점에 대해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판을 가해왔다. 주요 비판은 다음과 같다.
- 마이클 개스터(Michael Gaster)
"단일적이고 통합된 중국이라는 옛 그림 대신 다양한 중국이라는 새 그림을 수용하기 위해서 어떤 분석적 도구를 개발하고 있는가"
- 대니스 그래플린(Dennis Grafflin)
"일단 중국을 시간, 공간, 문화, 사회 등에 따라 해체해버린다면, 코헨이 요구하는 중국 자신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중국을 다시 묶어야 하지 않을까?"
- 필자의 생각
"기존의 주류 관점에서 탈피하여 접근한다는 점에는 의의가 있지만, '중국 자신에 입각한 접근법'이 에서의 '중국'은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가. 광대한 영토의 중국은 지역마다 기억하는 역사가 다를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누구를 대표하게 되는가. 지역적으로 볼 때, 민족을 고려하여 볼 때, 중국은 베이징인가? 한족인가? "
코헨의 반론
"2차 대전이후, 20년동안 인문학 전체에서는 중국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었다. 이는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이질적인 성격의 민족들에게는 중국 자신에 입각한 접근법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동화된 경우에는 들어맞을 것이다. 또한 이 접근법의 핵심적인 특징은, 중국 세계를 보다 작고, 보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적인 단위들로 나누고, 또 그렇게 해서 종교, 인종, 그리고 사회적 차이를 포함한 지역적인 변형의 전체적인 범주를 더 긴밀하고 용이하게 탐구함으로써 중국의 방대한 다양성과 복합성에 적절하게 대처하려는 것이다.[4]"
"모든 사례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접근법은 중국에 관한 역사적인 연구의 상당히 실질적인 부분에 적용될 수 있으며, 때문에 여전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5] "
한계
중국 자신에 입각한 접근법이 가지는 한계는 무엇보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사를 넘어서는 것들, 예컨대 주변 국가와의 관계사나 비교사 등은 단순히 중국 자신에 입각한 접근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한족이 아닌 그룹인 소수민족에 관한 연구 또한 중국 자신에 입각한 분석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