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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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 (목) 22:56 판
개요
신안선은 14세기 중국 원나라 영파(寧波)에서[1] 출발하여 일본 하카타(福岡県)와 교토(京都)로 항해하던 중 고려의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중국의 무역선이다. 명나라 초기의 하서양과 함께 중세시기 중국의 대외무역 규모를 엿볼 수 있는 사료이다.
발견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6점의 청자가 건져 올려졌다. 어부가 신안군청에 이 사실을 신고하여 이듬해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고[2],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앞 해역 해저 20m 지점에서 길이 28m 규모의 선박 뼈대와 흩어져있는 유물들을 발견하였다. 발굴은 9년에 걸쳐 11차례 실시되었으며 중국의 도자기, 각종 금속공예품, 고려의 고려 청자와 청동 거울, 일본의 칠기그릇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와 동전 등 총 2만 6천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600여 년 간 해저에 잠겨있었으나 서해의 갯벌이 물살과 해충 등으로부터 보호 작용을 하여 갯벌에 잠겨있던 우측 선체와 유물들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선박
잔존선체 | 예상복원선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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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8.4m, 너비: 6.6m, 깊이: 3.6m |
전장: 34.0m, 전폭:11.0m, 깊이:4.5m 만재배수량: 200ton (추정량) |
건조정보: 14C 중국에서 만들어진 첨저형 선박 | |
신안선은 단면이 뾰족한 V자 형태의 전형적 첨저형(尖底型) 선박으로 깊은 바다의 파도를 가르며 운항하는 데 적합하도록 설계된 배이다. 첨저형 선박은 복건성 일대에서 주로 건조되던 방식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평저형(平底型) 선박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중국에서 제조된 배라는 확실한 단서이다. 신안선의 삼판 축조방식은 삼판 아랫면에 반턱을 따고 아래 삼판의 윗면에 겹쳐서 부착하는 클링커 방식으로, 삼판은 한 겹으로 되어 있다. 7개의 격벽과 8개의 화물창고가 설치된 구조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