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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대는 새로운 질서로의 개편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무질서와 혼란이 발생한다. 이것이 기득권층에게는 일탈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규범과 구속력이 그 범위와 대상을 달리하게 된다는 건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상앙의 법치는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상앙의 법치는 군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민의 복종과 순응을 가져오게 위해 항상적인 통치기제의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상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군주의 위상을 적립시키고 이로부터 신민과의 관계를 양자의 이기성에 의거한 합리적인 관계로 전환시킨다면 군주의 정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인간의 이기성을 합리성의 범주로 구속시킬 강력한 구속 장치로서 법제를 마련했다. 통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주의 존재 가치는 신민의 존재로부터 생겨난다. 법을 적용하기 위해 신민에게 법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평등성과 상벌의 체계화를 시행했다. 이것이 군주와 신민 모두에게 똑같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법에 의거해 신민의 생산을 강요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신민의 생존과 편의를 보장해주는 한편으로는 순응과 복종을 얻을 수 있었다. 신민들도 자신의 이기적 이익이 성취되는 순간 이것을 보장해주는 군주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게 된다. 이로부터 양자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규범으로서 의무가 형성되고 이러한 법은 의무에 기초한 정치적 관계의 규범화를 결과하는 기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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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4일 (토) 20:02 판

상앙

개요

상앙은 위나라 출신으로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기원전 390년경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치 행정학인 형명학을 평생의 동지인 시교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 위나라에 와서는 법가 정치 개혁가인 이희와 오기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 진나라에서 법가사상을 펼쳐 후에 진나라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의 생애

기원전 361년에 즉위한 진효공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가 첫 번째로 한 것이 인재를 모으는 일이었다.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20대 중반인 상앙은 진나라로 명망하여 부국강병의 술책을 통해 효공을 설득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공을 세운 사람에겐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겐 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정의 위신이 서고 모든 개혁이 뜻대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효공의 뜻에 부합되었고 효공 설득에 성공하였다. 이후상앙은 좌서장을 거쳐 총리 격인 대량조로 승진하여 정치 개혁의 총 설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변법을 성공시켜 약소국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전수전략과 병법에 능통하였던 상앙은 연전연승하여 후일 진나라를 천하통일 반열에 올려놓아다. 그러나 엄격한 법집행이 태자와 보수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진효공이 죽자, 역모의 모함으로 사지가 찢기고 가족 효공은 지이 참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정책

평가

전국 시대는 새로운 질서로의 개편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무질서와 혼란이 발생한다. 이것이 기득권층에게는 일탈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규범과 구속력이 그 범위와 대상을 달리하게 된다는 건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상앙의 법치는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상앙의 법치는 군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민의 복종과 순응을 가져오게 위해 항상적인 통치기제의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상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군주의 위상을 적립시키고 이로부터 신민과의 관계를 양자의 이기성에 의거한 합리적인 관계로 전환시킨다면 군주의 정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인간의 이기성을 합리성의 범주로 구속시킬 강력한 구속 장치로서 법제를 마련했다. 통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군주의 존재 가치는 신민의 존재로부터 생겨난다. 법을 적용하기 위해 신민에게 법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평등성과 상벌의 체계화를 시행했다. 이것이 군주와 신민 모두에게 똑같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법에 의거해 신민의 생산을 강요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신민의 생존과 편의를 보장해주는 한편으로는 순응과 복종을 얻을 수 있었다. 신민들도 자신의 이기적 이익이 성취되는 순간 이것을 보장해주는 군주에 대해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게 된다. 이로부터 양자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규범으로서 의무가 형성되고 이러한 법은 의무에 기초한 정치적 관계의 규범화를 결과하는 기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