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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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후한 말은 십상시의 난이 일어난 189년부터 헌제가 조비에게 국위를 선양한 220년까지를 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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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건적의 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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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한 말 184년, 대현량사를 자칭하는 장각이 황로의 도를 행하는 태평도를 세우니 잘못을 고백하게 하고 질병을 고치는 등 사람들을 현혹하였다. 제자 8명을 사방으로 파견하니 백성들과 하급관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화북, 화중, 강남에까지 이르니, 십수 년 만에 신도가 수십만에 달하였다. 장각은 36개의 방을 설치하여 교단을 관리하였다. 장각은 스스로를 천공장군, 두 아우를 각각 지공장군, 인공장군으로 임명하여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마땅히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라라.”며 한나라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장각 휘하의 마원의가 업에서 거병을 준비하다가 발각되어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니, 장각은 모든 방에 일제히 봉기할 것을 명하였다. 이들은 머리에 누런 두건을 둘렀으니 황건이라 불렸다. 조정은 크게 놀라 권력다툼을 그만두고 황보숭과 주준 등에게 4만의 병사를 파견하여 반란군을 토벌할 것을 명하였다. 치열한 전쟁 끝에 장각은 병사하고, 두 아우는 황보숭에게 잡혀 참수당했다. 이로써 황건적의 세력은 쇠퇴하였으나, 각지에서 잔당들의 반란이 이어지니 천하는 점점 더 곤궁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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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탁의 정권 장악 | ||
황건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매관매직으로 고위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무능한 관리들은 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고의 금을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등용하여 난을 진압하게 된다. 이들 청의파의 대표격인 사람이 원소였는데, 그는 영제가 붕어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하진과 모의하여 환관들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태후가 이를 허락지 않자 하진은 양주의 군벌인 동탁을 불러들여 하태후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이 때 하진이 환관들의 계략에 빠져 살해당하니, 원소는 이를 빌미로 병력을 이끌고 환살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중상시 단규, 장양 등이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동탁에게 붙잡혀 죽는다.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동탁은 낙양에 입성한 뒤 금군을 흡수하여 정권을 잡았고, 이내 외척세력이 버티고 있는 소제를 폐하고 후견인이 없는 유협을 제위에 올리니 원소는 감히 맞서지 못하고 탈출하여 기주로 도망하였고, 원술, 조조 등도 고향으로 도망치게 된다. 하태후와 소제를 독살한 동탁은 마침내 낙양에서 전횡을 일삼기 시작한다. | 황건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매관매직으로 고위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무능한 관리들은 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고의 금을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등용하여 난을 진압하게 된다. 이들 청의파의 대표격인 사람이 원소였는데, 그는 영제가 붕어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하진과 모의하여 환관들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태후가 이를 허락지 않자 하진은 양주의 군벌인 동탁을 불러들여 하태후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이 때 하진이 환관들의 계략에 빠져 살해당하니, 원소는 이를 빌미로 병력을 이끌고 환살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중상시 단규, 장양 등이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동탁에게 붙잡혀 죽는다.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동탁은 낙양에 입성한 뒤 금군을 흡수하여 정권을 잡았고, 이내 외척세력이 버티고 있는 소제를 폐하고 후견인이 없는 유협을 제위에 올리니 원소는 감히 맞서지 못하고 탈출하여 기주로 도망하였고, 원술, 조조 등도 고향으로 도망치게 된다. 하태후와 소제를 독살한 동탁은 마침내 낙양에서 전횡을 일삼기 시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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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동탁 연합 | ||
이듬해 1월, 원소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劉代), 하내태수 왕광(王匡), 진류태수 장막(張邈), 광릉태수 장초(張超),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袁遺), 제북상 포신(鮑信) 등과 동시에 거병하여 반동탁 연합을 형성하니 각기 군세가 수만을 헤어렸다. 2월, 동탁은 연합군의 거병 소식을 듣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이 때 반동탁 연합군은 동탁군의 위세에 눌려 쉬이 진군하지 못하였다. 조조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앞장서 군을 이끌고 나아갔다가 동탁의 부장 서영에게 대패하여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아 위험에 처했으나, 종제인 조홍의 말을 빌려 타고 겨우 달아났다. <ref>“의병을 일으킨 것은 폭란(暴亂)을 징벌하고자 한 것이오. 대군이 이미 모였는데 제군들은 어찌 의심하시오? 만약 동탁이 산동병(山東兵)이 봉기했다는 것을 듣고 왕실의 중함에 의지하고 이주(二周-서주와 동주; 장안과 낙양)의 험고함에 기대어 동쪽으로 향해 천하에 임했다면 비록 무도(無道)하게 이를 행했다 하더라도 족히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 이듬해 1월, 원소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劉代), 하내태수 왕광(王匡), 진류태수 장막(張邈), 광릉태수 장초(張超),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袁遺), 제북상 포신(鮑信) 등과 동시에 거병하여 반동탁 연합을 형성하니 각기 군세가 수만을 헤어렸다. 2월, 동탁은 연합군의 거병 소식을 듣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이 때 반동탁 연합군은 동탁군의 위세에 눌려 쉬이 진군하지 못하였다. 조조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앞장서 군을 이끌고 나아갔다가 동탁의 부장 서영에게 대패하여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아 위험에 처했으나, 종제인 조홍의 말을 빌려 타고 겨우 달아났다. <ref>“의병을 일으킨 것은 폭란(暴亂)을 징벌하고자 한 것이오. 대군이 이미 모였는데 제군들은 어찌 의심하시오? 만약 동탁이 산동병(山東兵)이 봉기했다는 것을 듣고 왕실의 중함에 의지하고 이주(二周-서주와 동주; 장안과 낙양)의 험고함에 기대어 동쪽으로 향해 천하에 임했다면 비록 무도(無道)하게 이를 행했다 하더라도 족히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
2016년 5월 31일 (화) 15:18 판
후한 말은 십상시의 난이 일어난 189년부터 헌제가 조비에게 국위를 선양한 220년까지를 말한다.
- 황건적의 난
후한 말 184년, 대현량사를 자칭하는 장각이 황로의 도를 행하는 태평도를 세우니 잘못을 고백하게 하고 질병을 고치는 등 사람들을 현혹하였다. 제자 8명을 사방으로 파견하니 백성들과 하급관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화북, 화중, 강남에까지 이르니, 십수 년 만에 신도가 수십만에 달하였다. 장각은 36개의 방을 설치하여 교단을 관리하였다. 장각은 스스로를 천공장군, 두 아우를 각각 지공장군, 인공장군으로 임명하여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마땅히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라라.”며 한나라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장각 휘하의 마원의가 업에서 거병을 준비하다가 발각되어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니, 장각은 모든 방에 일제히 봉기할 것을 명하였다. 이들은 머리에 누런 두건을 둘렀으니 황건이라 불렸다. 조정은 크게 놀라 권력다툼을 그만두고 황보숭과 주준 등에게 4만의 병사를 파견하여 반란군을 토벌할 것을 명하였다. 치열한 전쟁 끝에 장각은 병사하고, 두 아우는 황보숭에게 잡혀 참수당했다. 이로써 황건적의 세력은 쇠퇴하였으나, 각지에서 잔당들의 반란이 이어지니 천하는 점점 더 곤궁해졌다.
- 동탁의 정권 장악
황건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매관매직으로 고위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던 무능한 관리들은 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고의 금을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등용하여 난을 진압하게 된다. 이들 청의파의 대표격인 사람이 원소였는데, 그는 영제가 붕어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하진과 모의하여 환관들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태후가 이를 허락지 않자 하진은 양주의 군벌인 동탁을 불러들여 하태후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이 때 하진이 환관들의 계략에 빠져 살해당하니, 원소는 이를 빌미로 병력을 이끌고 환살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중상시 단규, 장양 등이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동탁에게 붙잡혀 죽는다.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동탁은 낙양에 입성한 뒤 금군을 흡수하여 정권을 잡았고, 이내 외척세력이 버티고 있는 소제를 폐하고 후견인이 없는 유협을 제위에 올리니 원소는 감히 맞서지 못하고 탈출하여 기주로 도망하였고, 원술, 조조 등도 고향으로 도망치게 된다. 하태후와 소제를 독살한 동탁은 마침내 낙양에서 전횡을 일삼기 시작한다.
- 반동탁 연합
이듬해 1월, 원소는 자신을 맹주로 하여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劉代), 하내태수 왕광(王匡), 진류태수 장막(張邈), 광릉태수 장초(張超),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袁遺), 제북상 포신(鮑信) 등과 동시에 거병하여 반동탁 연합을 형성하니 각기 군세가 수만을 헤어렸다. 2월, 동탁은 연합군의 거병 소식을 듣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이 때 반동탁 연합군은 동탁군의 위세에 눌려 쉬이 진군하지 못하였다. 조조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앞장서 군을 이끌고 나아갔다가 동탁의 부장 서영에게 대패하여 타고 있던 말이 화살에 맞아 위험에 처했으나, 종제인 조홍의 말을 빌려 타고 겨우 달아났다. [1] 연합군이 모이기 시작하여 10여만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매일 주연을 펼치며 진격하려 하지 않으니 조조가 이를 질책하며 계책을 건의하였다.[2] 그러나 이는 장막 등의 반대로 채택되지 않았다. 유대와 교모는 서로를 미워하여 다투다가, 유대가 교모를 죽였다. 원소와 한복은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 하였으나 조조가 반대하였고,[3] 유우 또한 끝내 이를 거절하였다.
불탄 낙양을 정리하던 도중에 손견은 심상치 않은 우물을 발견하여 그 안을 파보도록 하니, 그 안에 전국옥새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챈 원술은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내놓도록 협박하였고, 손견은 아내의 안전을 위해 원술에게 옥새를 내주었다. 연합군은 서로 간에 공을 다투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동탁군에게 연신 밀렸고, 연합군의 맹주인 원소가 한복을 속여 기주를 차지하고 군사를 물려 돌아가자 연합군은 해체되었다.
- ↑ “의병을 일으킨 것은 폭란(暴亂)을 징벌하고자 한 것이오. 대군이 이미 모였는데 제군들은 어찌 의심하시오? 만약 동탁이 산동병(山東兵)이 봉기했다는 것을 듣고 왕실의 중함에 의지하고 이주(二周-서주와 동주; 장안과 낙양)의 험고함에 기대어 동쪽으로 향해 천하에 임했다면 비록 무도(無道)하게 이를 행했다 하더라도 족히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그러나) 이제 궁실을 불태우고 천자를 겁박해 천도해서 해내(海內-천하)가 진동하여 돌아갈 곳을 모르니 이는 하늘이 그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오. 한 번의 싸움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오.”
- ↑ “제군(諸君)들은 내 계책을 들어보시오. 발해(勃海-발해태수 원소)는 하내의 군사를 이끌고 맹진(孟津)에 임하게 하고, 산조(酸棗)의 제장들은 성고(成皐)를 지키며 오창(敖倉-형양 북서쪽에 있던 양식저장창고)을 점거하고 환원(轘轅), 태곡(太谷)을 틀어막아 험요지 전부를 제압하며(※환원, 태곡은 낙양 남동쪽의 요충지), 원장군(후장군 원술)은 남양의 군사를 이끌고 단(丹-남양군 단수丹水현), 석(析-남양군 석현)에 주둔하여 무관(武關)으로 들어가게 해 삼보(三輔-장안 일대)를 뒤흔드는 것이오. 모두 보루를 높이고 벽을 깊게 파 더불어 싸우지 않으며, 의병(疑兵-속이는 군사)을 두어 천하에 형세를 과시하며 순(順)으로 역(逆)을 토벌한다면 가히 평정할 수 있소. 지금 군사가 의(義)로 일어났으나 의심을 품은 채 진격하지 않아 천하의 바람을 저버리고 있으니 삼가 생각컨대 제군들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오.”
- ↑ “동탁이 죄를 지어 사해(四海)에서 난폭하자 우리가 대군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는데,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이에 응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는 우리가 의(義)로써 움직였기 때문이오. 지금 어린 주인이 미약하여 간신들에게 제압당하였으나 창읍(昌邑-전한 초 창읍왕)과 같은 망국지흔(亡國之釁-망국의 허물)은 아직 없소. 그런데 하루아침에 바꾼다면 천하인 중 누가 안심하겠소? 제군들이 (유우를 향해) 북면(北面)한다면 나는 (황제를 향해) 서향(西向)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