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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만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 즉 『세계의 서술』로서 그의 글 어디에서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 대해서 서술할 때 그것을 동방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의 대부분이 아시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지리적으로 부르는 ‘아시아’라는 정확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에는 동아프리카 해안지역과 러시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유럽 외의 나머지 모든 ‘세계’에 대해 서술하려했던 것이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동방견문록』이라는 제목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음을 피할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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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책은 모두 23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기존 번역본들에서는 서편을 비롯하여 모두 여덟 개의 편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 ||
+ | : 서편은 마르코 폴로가 어떠한 연유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어떤 사정으로 돌아와 책을 구술하게 되었는가 하는 배경적 설명이다. | ||
+ | : 1편은 대‧소 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을 포함하는 서아시아에 대한 기술이다. | ||
+ | : 2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 분지를 경유하는 중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 ||
+ | : 3편은 쿠빌라이의 수도인 원나라 상도와 대도의 모습과 쿠빌라이 칸의 통치내용을 다루고 있다. | ||
+ | : 4편에서는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체험했던 중국의 북부(카타이)와 사천‧운남을 거쳐 미얀마에 이르는 지역을 설명한다. | ||
+ | : 5편은 당시 ‘만지’라고 불리던 남송의 영역, 즉 중국의 동남부를 포괄한다. | ||
+ | : 6편은 마르코 폴로 일가가 중국을 떠나 귀환하는 길에 보고 들은 인도양 각지(대인도‧소인도‧중인도)의 사정이다. | ||
+ | : 마지막 7편에서는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북극지방까지 설명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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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처럼 그가 설명하는 지역의 범위로는 북으로는 극지대에서 남으로는 자바와 수마트라 및 잔지바르와 모가디슈에까지 이르고, 서로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동으로는 일본에까지 미치고 있으니, 사실상 유럽을 제외하고는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세계’를 포함한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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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첫째, 마르코 폴로는 어디를 가든지 방향과 거리를 명시하여 각 도시와 지방의 지리적 위치를 밝히려고 했다. | ||
+ | : 둘째, 그는 각 지방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동식물과 광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빼놓지 않는다. | ||
+ | : 셋째, 마르코 폴로는 각지 주민들의 생활방식에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항주의 도시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전편의 백미를 이루고 있으며, 현존하는 중국의 어떤 사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13세기 후반 항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
+ | : 넷째, 주민들의 풍습과 종교적인 의식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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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한 자세하고 다각적인 측면들 덕택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당시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지역에 대한 ‘지리지’이고 ‘박물지’이며 동시에 ‘민족지’라 불릴 만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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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 안에서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글은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를 저울질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뚜렷이 내보인다. 다만, 그가 기독교도였고 십자군전쟁을 치른 유럽의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이슬람에 대한 그의 입장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태도와 서술은 자유로웠고, 당시 유럽인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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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러한 마르코 폴로와 『동방견문록』의 다원적 세계관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효하고 공존하는 세계에 오랫동안 살면서 특히 그러한 문화적 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몽골제국(원나라)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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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첫째, 이 책에는 당시 중국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중국의 문자나 인쇄술, 차 문화, 만리장성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 ||
+ | : 둘째, 마르코 폴로 자신의 주선으로 제작한 투석기로 양양을 함락했다고 했지만 그 도시는 이미 폴로가 도착하기 전에 함락되었다. | ||
+ | : 셋째, 양주에서 3년간 통치했다는 폴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 | ||
+ | : 넷째, 최근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즉 『동방견문록』은 동방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지리 지식의 집적이며 “여러 명의 마르코 폴로”에 의해 수정‧보충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의 실존을 입증할 만한 외재적인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 ||
+ | : 다섯째, 『동방견문록』은 상인 출신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물질적인 측면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한계성도 지닌다. 그가 도처에서 “훌륭한 도시”나 “훌륭한 지방”이라고 했을 때, “훌륭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상품적 가치에 바탕한 것이었다. |
2016년 6월 9일 (목) 22:13 판
제목의 오류성
-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만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 즉 『세계의 서술』로서 그의 글 어디에서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견문을 토대로 여러 지역에 대해서 서술할 때 그것을 동방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의 대부분이 아시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지리적으로 부르는 ‘아시아’라는 정확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책에는 동아프리카 해안지역과 러시아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유럽 외의 나머지 모든 ‘세계’에 대해 서술하려했던 것이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동방견문록』이라는 제목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음을 피할 수 없다.
구성 및 내용
- 이 책은 모두 23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기존 번역본들에서는 서편을 비롯하여 모두 여덟 개의 편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 서편은 마르코 폴로가 어떠한 연유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어떤 사정으로 돌아와 책을 구술하게 되었는가 하는 배경적 설명이다.
- 1편은 대‧소 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을 포함하는 서아시아에 대한 기술이다.
- 2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 분지를 경유하는 중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 3편은 쿠빌라이의 수도인 원나라 상도와 대도의 모습과 쿠빌라이 칸의 통치내용을 다루고 있다.
- 4편에서는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체험했던 중국의 북부(카타이)와 사천‧운남을 거쳐 미얀마에 이르는 지역을 설명한다.
- 5편은 당시 ‘만지’라고 불리던 남송의 영역, 즉 중국의 동남부를 포괄한다.
- 6편은 마르코 폴로 일가가 중국을 떠나 귀환하는 길에 보고 들은 인도양 각지(대인도‧소인도‧중인도)의 사정이다.
- 마지막 7편에서는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북극지방까지 설명하고 있다.
- 이처럼 그가 설명하는 지역의 범위로는 북으로는 극지대에서 남으로는 자바와 수마트라 및 잔지바르와 모가디슈에까지 이르고, 서로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동으로는 일본에까지 미치고 있으니, 사실상 유럽을 제외하고는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세계’를 포함한 것이었다.
특징
- 첫째, 마르코 폴로는 어디를 가든지 방향과 거리를 명시하여 각 도시와 지방의 지리적 위치를 밝히려고 했다.
- 둘째, 그는 각 지방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동식물과 광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빼놓지 않는다.
- 셋째, 마르코 폴로는 각지 주민들의 생활방식에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항주의 도시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전편의 백미를 이루고 있으며, 현존하는 중국의 어떤 사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13세기 후반 항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넷째, 주민들의 풍습과 종교적인 의식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 이러한 자세하고 다각적인 측면들 덕택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당시 유럽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지역에 대한 ‘지리지’이고 ‘박물지’이며 동시에 ‘민족지’라 불릴 만하다.
-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 안에서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글은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를 저울질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뚜렷이 내보인다. 다만, 그가 기독교도였고 십자군전쟁을 치른 유럽의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이슬람에 대한 그의 입장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태도와 서술은 자유로웠고, 당시 유럽인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 이러한 마르코 폴로와 『동방견문록』의 다원적 세계관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혼효하고 공존하는 세계에 오랫동안 살면서 특히 그러한 문화적 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몽골제국(원나라)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문점 및 한계
- 첫째, 이 책에는 당시 중국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중국의 문자나 인쇄술, 차 문화, 만리장성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 둘째, 마르코 폴로 자신의 주선으로 제작한 투석기로 양양을 함락했다고 했지만 그 도시는 이미 폴로가 도착하기 전에 함락되었다.
- 셋째, 양주에서 3년간 통치했다는 폴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
- 넷째, 최근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이 이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즉 『동방견문록』은 동방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지리 지식의 집적이며 “여러 명의 마르코 폴로”에 의해 수정‧보충되어 완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의 실존을 입증할 만한 외재적인 물증이 없다는 주장이다.
- 다섯째, 『동방견문록』은 상인 출신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물질적인 측면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한계성도 지닌다. 그가 도처에서 “훌륭한 도시”나 “훌륭한 지방”이라고 했을 때, “훌륭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상품적 가치에 바탕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