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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서적을 모두 태운 뒤에 진나라의 정치를 비판한 유학자 460여 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했다. 그러나 이 갱유에 대해선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으로 추측하는 설이 있다. | 진시황은 서적을 모두 태운 뒤에 진나라의 정치를 비판한 유학자 460여 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했다. 그러나 이 갱유에 대해선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으로 추측하는 설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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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0일 (월) 18:30 판
분서갱유는 다른말로 진화라고도 불린다. 이는 진시황이 사상통제의 일환으로 농서를 제외한 서적들을 모두 불태우고 수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때 불태운 서적들은 현대와 다르게 대부분 대나무로 만들었으며 그 시기에 기록 수단이었던 죽간이었다. 이는 언론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분서와 갱유
분서
진나라는 군현제도를 채용했으나 유학자 가운데는 주나라의 봉건제도를 찬양하고 황제의 정치를 비방하는 자가 있었는데, 황제는 이설을 탄압하기 위하여 기원전 213년 박사관 소장의 서적과 의 · 약 · 복서· 농업 서적 이외의 민간 소장의 서적들을 모두 불태웠다.
갱유
진시황은 서적을 모두 태운 뒤에 진나라의 정치를 비판한 유학자 460여 명을 구덩이에 생매장했다. 그러나 이 갱유에 대해선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으로 추측하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