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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상서>>는 [[한 경제]](景帝) 때 노나라 공왕이 자신의 궁을 확장하려고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논어]]>>, <<효경>>, <<[[춘추]]>>와 함께 나왔다고 한다. 옛 글시체로 쓰여 있다고 해서 고문(古文)이란 말을 붙인 것이며 29편인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더 많았다. 하지만 당시 <<고문상서>>는 한나라 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츰 유실되고 말았으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58편의 <<고문상서>>는 동진(東晉) 때 매색(枚賾)이 구해바친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문상서>> 58편중 33편은 <<금문상서>> 29편을 근거로 하고 나머지 25편은 위작으로 알려져 있어 <<위 고문상서(伪 古文尚书)>>라고도 한다. | <<고문상서>>는 [[한 경제]](景帝) 때 노나라 공왕이 자신의 궁을 확장하려고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논어]]>>, <<효경>>, <<[[춘추]]>>와 함께 나왔다고 한다. 옛 글시체로 쓰여 있다고 해서 고문(古文)이란 말을 붙인 것이며 29편인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더 많았다. 하지만 당시 <<고문상서>>는 한나라 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츰 유실되고 말았으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58편의 <<고문상서>>는 동진(東晉) 때 매색(枚賾)이 구해바친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문상서>> 58편중 33편은 <<금문상서>> 29편을 근거로 하고 나머지 25편은 위작으로 알려져 있어 <<위 고문상서(伪 古文尚书)>>라고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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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이상진, 이자한, <<서경>>, 자유문고, 2004, ISBN 89-7030-068-6 | *이상진, 이자한, <<서경>>, 자유문고, 2004, ISBN 89-7030-068-6 | ||
*김학주, <<새로 옮긴 서경>>, 명문당, 2012, ISBN 978-89-7270-961-9 | *김학주, <<새로 옮긴 서경>>, 명문당, 2012, ISBN 978-89-7270-9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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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 (화) 16:56 판
흔히 <<상서(尙書)>>라고 불리는 <<서경(書經)>>은 중국 요순 시대(堯舜)부터 주나라(周)시대까지 덕으로 다스린 군주들의 문서를 수집하여 공자가 편찬한 책이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서경>>은 우(禹)나라 사관의 기록 5편, 하(夏)나라 사관의 기록 4편, 상(商)나라 사관의 기록 17편, 주(周)나라 사관의 기록 32편 도합 58편인데 이는 후세에 가짜로 만들어진 <<고문상서(古文尙書)>>이다.
서경의 시대배경
<<서경>>의 시대배경은 요순 시대부터 주나라 시대까지다. 유가에서는 요순 시대를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졌던 시대였다고 떠받들어 왔다. 그 후 우(禹), 탕(湯), 문(文), 무(武)까지를 덕치의 끝으로 보았다. 이에 위의 성군들의 정치를 중심으로 기록된 문서를 수집하여 정리한 것이 서경이라 할 수 있겠다.
서경의 가치
<<서경>>은 중국 문화에서 산문의 조상이라 일컬어진다. <<서경>>은 산문으로 쓰여진 책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중국 산문의 발달은 <<서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서경>>은 유가의 덕치주의(德治主義)사상, 도가의 무위이치(無爲而治)사상, 묵가의 숭검비명(崇儉非命)사상, 법가의 법치주의(法治主義)사상 등 모든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중국 경전의 조상이기도 하다.
금문상서와 고문상서
<<서경>>은 진시황이 세상의 책들을 모두 모아 태운 분서(焚書)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금문상서>>는 29편으로 진나라의 분서 때 박사(博士)인 복생(伏生)이 상서를 몰래 벽 속에 감춰두었던 것을 한 문제(文帝) 때에 태상장고(太常掌故)였던 조조(晁錯)를 보내어 베끼도록 한 것이다.
<<고문상서>>는 한 경제(景帝) 때 노나라 공왕이 자신의 궁을 확장하려고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 속에서 <<논어>>, <<효경>>, <<춘추>>와 함께 나왔다고 한다. 옛 글시체로 쓰여 있다고 해서 고문(古文)이란 말을 붙인 것이며 29편인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더 많았다. 하지만 당시 <<고문상서>>는 한나라 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츰 유실되고 말았으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58편의 <<고문상서>>는 동진(東晉) 때 매색(枚賾)이 구해바친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문상서>> 58편중 33편은 <<금문상서>> 29편을 근거로 하고 나머지 25편은 위작으로 알려져 있어 <<위 고문상서(伪 古文尚书)>>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 이상진, 이자한, <<서경>>, 자유문고, 2004, ISBN 89-7030-068-6
- 김학주, <<새로 옮긴 서경>>, 명문당, 2012, ISBN 978-89-7270-9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