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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세대란 1980년대 중반 대거 등장한 영화 감독들로, 이들은 대부분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으며, 1978년 중국에서 정식 대입고사가 부활되었을 때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하고 졸업하였다. 이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미학까지 개방적 태도를 가지고 받아들이며 전례 없는 독자성과 다양한 표현양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 + | 제5세대란 1980년대 중반 대거 등장한 영화 감독들로, 이들은 대부분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으며, 1978년 중국에서 정식 대입고사가 부활되었을 때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하고 졸업하였다. 이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미학까지 개방적 태도를 가지고 받아들이며 전례 없는 독자성과 다양한 표현양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은유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으며, 중국 영화가 세계의 관심을 받고 중국 영화의 황금기를 열었다. 대표 감독과 작품으로는 [[천카이거]]의 <[[황토지]]>, <[[대열병]]>, <[[패왕별희]]>, [[황젠신]]의 <[[흑포사건]]>, [[톈좡좡]]의 <[[말도둑]]>, [[우쯔뉴]]의 <[[마지막 겨울날]]>,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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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세대는 [[세대론]]에 따라 5세대로 구분된 감독들의 집단으로, 1980년대 중반 중국영화가 새로운 경향을 띄는데 주력한 인물들이다. 5세대 영화들은 이전의 중국영화들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등장하여 국내외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5세대 감독들은 [[개혁개방]]과 더불어 밀려든 [[서구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구의 영화미학을 학습했지만 [[문화대혁명]]기간에 하방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에 대해 깊이 정찰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다. [[장쥔자오]]의 <[[한 사람과 여덟 사람]]>을 시작으로 5세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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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시절=== | ||
+ | 제5세대 감독들의 창작 모티브는 그들의 과거 경험과 관련이 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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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부터 약 10년간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혼란과 폭력으로 몰아넣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마오쩌둥 숭배]], 당 내의 끊임없는 권력투쟁,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 그리고 [[극단적 공산주의]]의 이상과 상징으로 점철된 모든 영역의 정치화, 등을 공통적으로 체험했다. 또한 마오쩌둥의 '농촌에서의 생활과 작업을 통한 교육'이라는 지침 아래 모든 도시의 학생들은 농촌에 내려가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 젊은이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중국 문화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혁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부패가 가득한 도시생활에서 젊은이들이 지난 10년간 농촌에서 직접 경험하고 배웠던 모든 가치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이는 제5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무기력함, 상실감, 경직성, 정신적 빈곤상태 등으로 표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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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의 특징== | ==5세대의 특징== | ||
+ | ===문학과 영화의 결합=== | ||
+ | [[신시기]]가 되어 문학이 힘을 되찾고 명예를 되찾음과 동시에 영화계에서도 문혁시기에 억눌러야 했던 창작을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영화계에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발전되자 많은 영화인들이 문학작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문학과 영화를 결합하고자하는 시도를 하였다. 그리하여 [[제4세대]], 제5세대, 그리고 [[제6세대]] 감독들은 문학작품을 각색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주로 소설만 선택하고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하며 현실주의적 영화미학만을 따랐던 4세대와 달리, 5세대는 시나 산문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실험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5세대 감독들은 원작을 과감히 변형시켜 재창조 하였으며, 영화 제목 또한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하였다. 이는 5세대 감독들의 원작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토대로 자신의 영화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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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업화된 영화=== | ||
+ | 1980년대 말, 경제 개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영화계에도 '상업화'현상이 나타나, 중국영화계에 전반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중국 사회에 소비주의와 상품화 현상이 팽배해지면서 현대화되고 도시화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급격하게 변해갔고, 문화적 취향도 다양해졌다. 또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체제가 전환됨에 따라 정부가 영화제작사에 지원하던 재정을 중단하면서 각 제작사들은 시장경제 체제의 원리를 고려해야했고,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은 중국의 영화산업이 상업영화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도시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전과 달리 도시가 대중들에게 영화의 배경으로서 보다 친숙해지고, 상업영화가 발달하면서 '[[도시영화]]'도 새롭게 부활하게 되었다. 또한 5세대는 1990년대에 이르러 '[[민속영화]]'라는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나갔다. 민속영화에서는 중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경극]], [[관혼상제]] 등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흥행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상품화'하여 중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
− | == | + | ===엄격한 검열에 의한 표현양식 변화=== |
− | + | 5세대 영화는 당에 의해 검열을 받았었는데 그 정도가 매우 엄격했다. 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작품은 아예 상영 금지 당했으며 그런 작품을 만든 사람은 비판받거나 제재를 당했다. 하지만 제5세대 감독들은 이러한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 속에 자신의 뜻을 싣고자 하였다. 당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가 있으면 국내에서는 아예 상영조차 못했기 때문에 5세대 영화에서 사회비판적 시각은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그들 영화의 특징이 되었다. 동시에 이전의 [[공산당]]의 지침 아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장르나 표현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표현양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 |
− | == | + | ===독특한 영상언어와 영상미학=== |
− | ==대표 작품== | + | ==5세대의 의의== |
+ | 제5세대의 등장으로 중국영화의 존재를 새롭게 재시하며 중국영화의 또 다른 황금기가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렸다. 중국 5세대의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은 중국 영화를 예술 영화로 만들었고, 중국 영화를 서구 영화계로부터 크게 주목받도록 하였다. 이로써 중국 영화는 변방의 예술이 아닌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5세대 감독들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대호평을 받아 중국의 경직된 사회구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기존의 중국영화 전통인 국가의 강요, 서구 문화의 무분별한 수용과 인생관, 유교적 전통 등에 반기를 들고 나타나 중국영화의 단절과 혁신의 전환점을 제시했으며, 새로운 영상기법과 영화이론들을 도입하고 고유한 문화전통을 되살려 내어 중국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성, 독창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
+ | ==대표 감독과 작품== | ||
+ | *[[장쥔자오]] - <[[하나 그리고 여덟]]> | ||
+ | *[[천카이거]] - <[[황토지]]>, <[[대열병]]>, <[[패왕별희]]>, <[[아이들의 왕]]> | ||
+ | *[[황젠신]] - <[[흑포사건]]>, <[[전위]]> | ||
+ | *[[톈좡좡]] - <[[말도둑]]>, <[[사냥터에서]]> | ||
+ | *[[우쯔뉴]] - <[[마지막 겨울날]]>, <[[즐거운 영웅]]> | ||
+ | *[[장이머우]] - <[[붉은 수수밭]]>, <[[홍등]]> | ||
==참고문헌== | ==참고문헌== |
2016년 6월 23일 (목) 22:01 판
목차
요약
제5세대란 1980년대 중반 대거 등장한 영화 감독들로, 이들은 대부분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으며, 1978년 중국에서 정식 대입고사가 부활되었을 때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하고 졸업하였다. 이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미학까지 개방적 태도를 가지고 받아들이며 전례 없는 독자성과 다양한 표현양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은유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으며, 중국 영화가 세계의 관심을 받고 중국 영화의 황금기를 열었다. 대표 감독과 작품으로는 천카이거의 <황토지>, <대열병>, <패왕별희>, 황젠신의 <흑포사건>, 톈좡좡의 <말도둑>, 우쯔뉴의 <마지막 겨울날>,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등이 있다.
제5세대
제5세대는 세대론에 따라 5세대로 구분된 감독들의 집단으로, 1980년대 중반 중국영화가 새로운 경향을 띄는데 주력한 인물들이다. 5세대 영화들은 이전의 중국영화들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등장하여 국내외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5세대 감독들은 개혁개방과 더불어 밀려든 서구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구의 영화미학을 학습했지만 문화대혁명기간에 하방된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에 대해 깊이 정찰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다. 장쥔자오의 <한 사람과 여덟 사람>을 시작으로 5세대의 막이 열리게 된다.
5세대의 배경
어린시절
제5세대 감독들의 창작 모티브는 그들의 과거 경험과 관련이 깊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향
1966년부터 약 10년간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혼란과 폭력으로 몰아넣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마오쩌둥 숭배, 당 내의 끊임없는 권력투쟁, 시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 그리고 극단적 공산주의의 이상과 상징으로 점철된 모든 영역의 정치화, 등을 공통적으로 체험했다. 또한 마오쩌둥의 '농촌에서의 생활과 작업을 통한 교육'이라는 지침 아래 모든 도시의 학생들은 농촌에 내려가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 젊은이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중국 문화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혁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부패가 가득한 도시생활에서 젊은이들이 지난 10년간 농촌에서 직접 경험하고 배웠던 모든 가치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이는 제5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무기력함, 상실감, 경직성, 정신적 빈곤상태 등으로 표현된다.
등장
문혁시기가 막을 내리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기본 정책으로 하는 '신시기'에 접어들면서 영화인들을 포함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고자 했고 이는 신시기 초기에 그들의 엘리트정신이 급부상하게 되는데 일조한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며 사회 부패를 비판하였다.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열린 사회구조는 영화인들과 지식들로 하여금 당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당을 비판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제5세대 감독들은 특히나 유별난 집단이었다. 제5세대가 급부상하던 1980년대 중반은 문화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이러한 문화 열풍 속에서도 제5세대의 영화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경향의 영화의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게 된다.
5세대의 특징
문학과 영화의 결합
신시기가 되어 문학이 힘을 되찾고 명예를 되찾음과 동시에 영화계에서도 문혁시기에 억눌러야 했던 창작을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영화계에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발전되자 많은 영화인들이 문학작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문학과 영화를 결합하고자하는 시도를 하였다. 그리하여 제4세대, 제5세대, 그리고 제6세대 감독들은 문학작품을 각색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주로 소설만 선택하고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하며 현실주의적 영화미학만을 따랐던 4세대와 달리, 5세대는 시나 산문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실험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5세대 감독들은 원작을 과감히 변형시켜 재창조 하였으며, 영화 제목 또한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하였다. 이는 5세대 감독들의 원작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토대로 자신의 영화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상업화된 영화
1980년대 말, 경제 개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영화계에도 '상업화'현상이 나타나, 중국영화계에 전반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중국 사회에 소비주의와 상품화 현상이 팽배해지면서 현대화되고 도시화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급격하게 변해갔고, 문화적 취향도 다양해졌다. 또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체제가 전환됨에 따라 정부가 영화제작사에 지원하던 재정을 중단하면서 각 제작사들은 시장경제 체제의 원리를 고려해야했고,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은 중국의 영화산업이 상업영화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도시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전과 달리 도시가 대중들에게 영화의 배경으로서 보다 친숙해지고, 상업영화가 발달하면서 '도시영화'도 새롭게 부활하게 되었다. 또한 5세대는 1990년대에 이르러 '민속영화'라는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나갔다. 민속영화에서는 중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경극, 관혼상제 등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흥행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상품화'하여 중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엄격한 검열에 의한 표현양식 변화
5세대 영화는 당에 의해 검열을 받았었는데 그 정도가 매우 엄격했다. 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작품은 아예 상영 금지 당했으며 그런 작품을 만든 사람은 비판받거나 제재를 당했다. 하지만 제5세대 감독들은 이러한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 속에 자신의 뜻을 싣고자 하였다. 당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가 있으면 국내에서는 아예 상영조차 못했기 때문에 5세대 영화에서 사회비판적 시각은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그들 영화의 특징이 되었다. 동시에 이전의 공산당의 지침 아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장르나 표현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표현양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독특한 영상언어와 영상미학
5세대의 의의
제5세대의 등장으로 중국영화의 존재를 새롭게 재시하며 중국영화의 또 다른 황금기가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렸다. 중국 5세대의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은 중국 영화를 예술 영화로 만들었고, 중국 영화를 서구 영화계로부터 크게 주목받도록 하였다. 이로써 중국 영화는 변방의 예술이 아닌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5세대 감독들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대호평을 받아 중국의 경직된 사회구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기존의 중국영화 전통인 국가의 강요, 서구 문화의 무분별한 수용과 인생관, 유교적 전통 등에 반기를 들고 나타나 중국영화의 단절과 혁신의 전환점을 제시했으며, 새로운 영상기법과 영화이론들을 도입하고 고유한 문화전통을 되살려 내어 중국영화의 다양성과 예술성, 독창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표 감독과 작품
- 장쥔자오 - <하나 그리고 여덟>
- 천카이거 - <황토지>, <대열병>, <패왕별희>, <아이들의 왕>
- 황젠신 - <흑포사건>, <전위>
- 톈좡좡 - <말도둑>, <사냥터에서>
- 우쯔뉴 - <마지막 겨울날>, <즐거운 영웅>
- 장이머우 - <붉은 수수밭>, <홍등>
참고문헌
- 김미정, 『영화로 보는 중국문화이야기』, 서울: 신아사, 2008.
- 이종희, 『중국 영화의 어제, 오늘, 내일』, 서울: 책세상, 2005.
- 임대근 외,『중국 영화의 이해』, 파주: 동녘, 2008.
- 슈테판 크라머, 황진자 역, 『중국영화사』, 서울: 이산,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