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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개혁적인 좌익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1930년대 이른바 ‘좌익영화’의 부흥은 [[유성영화(有聲映畵)]]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이후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5년 동안 고유한 영화세계를 탐색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시 사회의 모순에 주목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좌익계열의 영화감독들의 배경에는 좌익문화운동사업이 있었다.
 
  상해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개혁적인 좌익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1930년대 이른바 ‘좌익영화’의 부흥은 [[유성영화(有聲映畵)]]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이후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5년 동안 고유한 영화세계를 탐색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시 사회의 모순에 주목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좌익계열의 영화감독들의 배경에는 좌익문화운동사업이 있었다.
  
  좌익문화 통일조직인 좌련(左聯)은 1930년대 혁명문화운동의 핵심이자 1930년대 초 중국현대문화사에 하나의 대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에 중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모순(茅盾)이 참가한 후 새로운 면모로 새로운 전투에 투입되어 창작에 새로운 진전을 본다. 1932년 전후는 모순(茅盾)의 창작 풍작기(豊作期)였다. 그는 계속해서 장편소설 <자야(子夜)>와 단편소설 <임씨네가게(林家鋪子)>, <춘잠(春蠶)> 등을 썼다. 1933년 4월 상해 개명서점에서 출판된 <자야(子夜)>는 상해를 중심으로 민족 공업 자본가와 매판금융 자본가 간의 갈등을 줄거리로 삼았는데, 광활한 역사를 배경으로 진실 되고 심각하게 1930년대 초 중국사회의 전모(全貌)를 반영하여 제국주의 침략하에서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로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소설의 구조가 빈틈이 없고 웅장하며 줄거리는 변화가 많고 인물이 매우 많다. <자야(子夜)>는 혁명현실주의의 걸작이며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 혁명문화의 성숙을 상징하였다. 이 직품은 출반되자마자 문화계의 호평을 받았다. 한 편 1930년대 당의 지도 아래 좌익영화 산업이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하연, 전한, 양한생 등이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적 내용의 영화와 극본을 많이 써냈는데, <삼개마등녀성(三個摩登女性)>(1933), 모순(茅盾)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춘잠(春蠶)>(1933) 등이 그것이다. 1934년 이후 또 <도리겁(桃李劫)>(1934), <어광곡(漁光曲)>(1934), <풍운아녀(風雲兒女)>, <마로천사(馬路天使)>(1937) 등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여 항일과 민주를 선전(宣傳)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참여한 [[중국교육전영협회(中國敎育電影協會)]]에서 국민당 우파인 진립부(陳立夫)에 의해 중국영화대회가 개최되었고, 이 대회를 통해 좌익영화들이 1, 2등을 차지하며 좋은 영화로 선정되어 장려되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영화 제 1의 황금기’를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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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익문화 통일조직인 좌련(左聯)은 1930년대 혁명문화운동의 핵심이자 1930년대 초 중국현대문화사에 하나의 대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에 중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모순(茅盾)이 참가한 후 새로운 면모로 새로운 전투에 투입되어 창작에 새로운 진전을 본다. 1932년 전후는 모순(茅盾)의 창작 풍작기(豊作期)였다. 그는 계속해서 장편소설 <자야(子夜)>와 단편소설 <임씨네가게(林家鋪子)>, <춘잠(春蠶)> 등을 썼다. 1933년 4월 상해 개명서점에서 출판된 <자야(子夜)>는 상해를 중심으로 민족 공업 자본가와 매판금융 자본가 간의 갈등을 줄거리로 삼았는데, 광활한 역사를 배경으로 진실 되고 심각하게 1930년대 초 중국사회의 전모(全貌)를 반영하여 제국주의 침략하에서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로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소설의 구조가 빈틈이 없고 웅장하며 줄거리는 변화가 많고 인물이 매우 많다. <자야(子夜)>는 혁명현실주의의 걸작이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9554&cid=40942&categoryId=31636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 혁명문화의 성숙을 상징하였다. 이 직품은 출반되자마자 문화계의 호평을 받았다. 한 편 1930년대 당의 지도 아래 좌익영화 산업이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하연, 전한, 양한생 등이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적 내용의 영화와 극본을 많이 써냈는데, <삼개마등녀성(三個摩登女性)>(1933), 모순(茅盾)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춘잠(春蠶)>(1933) 등이 그것이다. 1934년 이후 또 <도리겁(桃李劫)>(1934), <어광곡(漁光曲)>(1934), <풍운아녀(風雲兒女)>, <마로천사(馬路天使)>(1937) 등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여 항일과 민주를 선전(宣傳)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참여한 [[중국교육전영협회(中國敎育電影協會)]]에서 국민당 우파인 진립부(陳立夫)에 의해 중국영화대회가 개최되었고, 이 대회를 통해 좌익영화들이 1, 2등을 차지하며 좋은 영화로 선정되어 장려되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영화 제 1의 황금기’를 주도하게 된다.
  
 
===1930년대 중국 좌익영화의 특징적 양상(樣相)===
 
===1930년대 중국 좌익영화의 특징적 양상(樣相)===

2016년 6월 24일 (금) 04:19 판

1930년대 상해 좌익영화운동

“좌익영화(左翼映畵)”이라는 단어의 출처

1930년대 중국영화의 황금기라 할 때는 1932년부터 1937년까지, 이전 시기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중국영화가 제작, 연출 그리고 호응을 일으키면서 붐을 일으킨 시기를 말한다. 사실, 좌익영화에 대한 개념은 1993년 이전까지는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 문제는 「중국좌익영화운동」이란 책을 편집하며, 좌익영화운동의 중심인물 중의 한 명인 하연(夏衍)이 1932년부터 1937년 6년간 9개 영화사에서 출품한 74개 중국작품을 ‘좌익영화’로 명명한 이후 구체화되었다.

20세기의 上海, 그리고 1930년대 중국영화의 모습

1930년대 중국 근대성을 밝히는 데 上海라는 도시공간은 중요하다. 20세기 초 上海는 조계지(租界地)가 형성된 식민지 현장인 동시에 중국 각지의 이주민으로 구성된 이민공간이다. 또한 서양문명의 진입구인 동시에 발달된 상업경제를 기반으로 한 소비문화 공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외적·내적 요소들은 上海에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주도하였고 근대적 도시문화의 혼종성(Hybridity)을 형성하였다. 1930년대 上海는 바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전통과 근대가 혼재(混在)된 문화를 숨 가쁘게 살아냈던 식민지적 근대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초 上海는 인구수가 많고 밀집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구조가 영화산업의 발전에 적합했다. 각지로부터 이민이 많았으며, 上海에는 중국 전통의 엘리트 문화와 사대부계층이 얕았고,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시민계층과 서민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들에게 신기함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소비가 다른 생활소비와 다른 점이 문화적 함의와 다원적 환경요소에 대한 의존에 있었으며, 上海가 바로 이런 소비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근대 上海에서 오락이 활발하게 일어난 원인으로 밀집된 인구, 특수하고 안정된 조계환경, 지속적으로 도입된 근대 물질문명, 인간관계가 유리(遊離)된 이민사회, 사회곳곳에 존재하는 방회(幫會) 세력,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등장 등을 들었다. 게다가 영화는 지식과 시야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영화 소비를 확대시켜주었다.

1930년대 전후(前後) 중국영화사의 시대적 배경

1920년대에는 중국인들이 식민지 속박과 봉건전통에서 벗어나 점차 정신적인 해방을 맛보기 시작했다. 젊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유학이나 사업상 외국에서 체류하다 접하게 된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이념들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중에는 노동운동과 같은 민주주의적 이상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중국 사회 체제의 독재를 깨뜨리고 정치적 개혁을 이룩하려 했던 새로운 예술 관념들도 있었다. 이처럼 새 출발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예술가와 작가들은 서양이나 중국의 오락영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표현양식의 기반을 조성했다.
영화매체의 미학적 측면과 정치적 기능을 고려하여 중국 예술가들의 절대다수가 수입영화에 등을 돌린 1920년대부터 실질적인 중국 영화사의 두 번째 출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사회적 모티프와 특히 국가적 모티프를 가지고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완전히 새롭게 장착시켰다. 점차 문화적·정치적 의미가 강조되기 시작한 초기 중국영화는 외국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 면에서 본다면 외국영화는 1950년 중국에서 강제추방 될 때까지 별 경쟁의 위협 없이 중국의 스크린을 지배했다. 
제작편수와 시장점유율에 따라 살펴보면 중국영화는 1940년대까지 현실을 주제로 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상업영화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기술과 자금의 부족,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중국 관객들의 ‘국제적 취향’에 맞서 실제적인 경쟁을 벌이기에는 그 어떤 영화 장르도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의 사회정치적 사건과 개혁은 문학·예술·영화가 계속 발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20세기 후반을 향해 영화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었다.
평화적 개혁을 바라던 중국의 희망은 1927년 상하이에서 노동자와 공산주의 동조자들이 장제스(蔣介石) 군대에 의해 학살됨으로써 사라져 버렸다. 장제스(蔣介石)가 공산주의 성향의 동맹자들을 제거한 후 부패한 공무원과 잘 무장된 지방 군벌들의 도움으로 정권을 거머쥐자, 사회개혁운동을 주도하던 지식인들은 무장투쟁 없이는 사회적 합법성과 민주적인 공동결정이 실현되는 중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희망의 상실로 인해 문학이 정치적으로 급진화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 성향이나 공산주의 성향을 띤 예술가와 실천가들은 영화도 국내외 억압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일본군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3월 9일 만주국을 세웠다. 곧바로 일본은 상하이를 공격했는데, 장제스(蔣介石)의 군대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사건은 중국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일본에 대한 장제스(蔣介石)의 유화정책(宥和政策)에 반대하는 저항의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930년대 중국의 좌익영화의 배경

상해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개혁적인 좌익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1930년대 이른바 ‘좌익영화’의 부흥은 유성영화(有聲映畵)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이후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5년 동안 고유한 영화세계를 탐색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시 사회의 모순에 주목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 좌익계열의 영화감독들의 배경에는 좌익문화운동사업이 있었다.
좌익문화 통일조직인 좌련(左聯)은 1930년대 혁명문화운동의 핵심이자 1930년대 초 중국현대문화사에 하나의 대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에 중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모순(茅盾)이 참가한 후 새로운 면모로 새로운 전투에 투입되어 창작에 새로운 진전을 본다. 1932년 전후는 모순(茅盾)의 창작 풍작기(豊作期)였다. 그는 계속해서 장편소설 <자야(子夜)>와 단편소설 <임씨네가게(林家鋪子)>, <춘잠(春蠶)> 등을 썼다. 1933년 4월 상해 개명서점에서 출판된 <자야(子夜)>는 상해를 중심으로 민족 공업 자본가와 매판금융 자본가 간의 갈등을 줄거리로 삼았는데, 광활한 역사를 배경으로 진실 되고 심각하게 1930년대 초 중국사회의 전모(全貌)를 반영하여 제국주의 침략하에서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로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소설의 구조가 빈틈이 없고 웅장하며 줄거리는 변화가 많고 인물이 매우 많다. <자야(子夜)>는 혁명현실주의의 걸작이며 Proletariat) 혁명문화의 성숙을 상징하였다. 이 직품은 출반되자마자 문화계의 호평을 받았다. 한 편 1930년대 당의 지도 아래 좌익영화 산업이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하연, 전한, 양한생 등이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적 내용의 영화와 극본을 많이 써냈는데, <삼개마등녀성(三個摩登女性)>(1933), 모순(茅盾)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춘잠(春蠶)>(1933) 등이 그것이다. 1934년 이후 또 <도리겁(桃李劫)>(1934), <어광곡(漁光曲)>(1934), <풍운아녀(風雲兒女)>, <마로천사(馬路天使)>(1937) 등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여 항일과 민주를 선전(宣傳)하였다. 이런 배경에는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참여한 중국교육전영협회(中國敎育電影協會)에서 국민당 우파인 진립부(陳立夫)에 의해 중국영화대회가 개최되었고, 이 대회를 통해 좌익영화들이 1, 2등을 차지하며 좋은 영화로 선정되어 장려되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영화 제 1의 황금기’를 주도하게 된다.

1930년대 중국 좌익영화의 특징적 양상(樣相)

1930년대 중국영화의 표현적인 특징 중 두드러진 것은 ‘낯설게 하기’ 기법의 드러남이다. 이 시기의 중국은 청조의 멸망 이후 주체적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채 서양과 결탁한 군벌들에 의한 만연한 부정부패로 인해 빚어진 부조리함과 비참한 현실과 일본과의 전쟁에 대한 불안은 매우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을 무렵이다. 시대적인 무기력감에 익숙해진 당시의 대중들의 감각은 그러한 일상에 감각이 자동화되어 버려 문제의식을 지니지 못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좌익사상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의지가 영화를 중심으로 표출하게된 것이다. 따라서 좌익작가들의 작품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대표적인 진보좌익 감독인 채초생의 <어광곡(漁光曲)>(1934)이다. 피폐화된 농촌상을 국민당 정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해안 어촌에서의 쌍둥이 형제의 기구한 삶으로 해석한 것이다. 무감각해져버린 어촌 일상의 삶을 기구한 삶이라는 낯선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일상의 지각을 새롭게 한 것이다. 원목지 감독의 <마로천사(馬路天使)>(1937)에서 도시빈민의 생활상이나 <어광곡(漁光曲)>(1934)같이 피폐화된 농촌상을 중심으로 중국 근대의 풍경을 재현할 때 소외된 군상(群像)이나 사라지고 소멸된 것과 못쓰게 된 물건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데 이러한 것들은 ‘낯설게 하기’를 유발시키는 유익한 소격(疏隔)과 동일한 효과를 나오게 한다.

기타(1930년대 중국 대표 좌익영화)

「교차로」(十字街頭,1937)와 「거리의 천사」(馬路天使,1936)

두서너 편의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중반 좌익 영화는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다시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심해지자 상하이에 있는 대부분의 영화사들은 활동을 중지했고, 많은 예술가와 제작자들은 지하로 숨거나 안전을 고려하여 홍콩으로 가서 가급적 비이데올로기적인 ――대개는 상업적인――영화를 만든다.

이 두 영화는 인민공화국 수렵 이전의 좌익 영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교차로」는 직업이 없는 대학 졸업생 4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다가 결국 같은 미래를 맞게 된다. 1930년대 상하이에 사는 네 주인공의 대립적인 성격과 그들의 삶을 통해 선시링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면서도 매우 이기적인 인간들이 살아가는 분열된 사회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네 명의 주인공들은 결국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무기력한 생활에서 벗어난다.
「거리의 천사」 역시 코미디로 각색되어 있긴 하지만 전쟁을 앞둔 당시 중국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들은 상하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상하이의 소시민들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뿌리를 부정한 채 사회의 외각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 걸어가는 길이 비극적 결말에 이를 때까지 ‘거리의 천사’로 상하이의 찻집과 유곽에서 힘겨운 일상의 무게를 견뎌 낸다. 두 영화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한 것으로 타락하고 도덕성을 상실한 채 힘든 환경 속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참고자료

  • 임대근 외 지음, 중국영화의 이해, 동녘, pp.252~
  • 슈테관 크라미 지음, 황진자 옮김, 중국영화사, 이산.
  • 이호현, 근대 속 상해영화:1930년대 좌익영화를 중심으로
  • 안상혁;한달호, 1930년대 중국영화 부흥의 배경 연구
  • 彭丽君, 重评1930年代的中国左翼电影运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