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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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세계의 발전법칙에 관한 인류의 인식사는 서로 대립적인 세계관을 지닌 형이상학적인 견해와 변증법적 견해가 있다. 형이상학적 견해(현학)은 오랫동안 관념론에 속해 온,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이란 고립적, 정지적 및 일면적 관점, 다시말해 세계의 일체 사물의 형태와 종류를 모두 영원히 서로 고립되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양적 증감과 장소의 이동에 불과한 것이며 이의 원이은 사물의 내부가 아닌 사물의 외부(외적인 힘의 충격)에 있다. 형이상학자들은 자본주의적 착취, 자본주의적 경제, 자본주의적 사회의 개인주의적 사상 등은 영원히 변함없이 존속하는 것이라보고 사회 발전의 원인을 사회 밖에 있는 지리, 기후 등의 조건으로써 설명하였다. 따라서 사물의 내적 모순으로 인하여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유물변증법적 학설을 부인하였고, 때문에 사물의 질적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한 질이 다른 질로 변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이 사상이 기계적 유물론과 19세기 말엽 및 20세기 초의 속류 진화론으로 표현되었다. | |
+ | 유물론변증법적 세계관은 사물의 내부로부터 한 사물의 다른 사물에 대한 관계로부터 사물의 발전을 연구할 것을 주장한다. 즉 사물의 발전을 사물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자기운동으로 간주하며 또 모든 매개 사물의 운동은 모두 그 주위의 다른 사물과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물 발전의 근본원인은 사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부에 있으며 사물에 내재하는 모순성에 있다. 어떠한 사물에나 그 내부에는 모두 이런 모순성이 있기 때문에 사물은 운동하며 발전하게 된다. 한 사물의 다른 사물과의 상호연관 및 상호영향은 사물발전의 이차적인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이 유물변증법은 형이상학적인 기계적 유물론 및 속류 진화론적 외인론 또는 피동론을 결정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각종 사물의 모순운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 ||
===모순의 보편성=== | ===모순의 보편성=== |
2016년 12월 24일 (토) 04:17 판
목차
고대 모순론의 유래
[[1]]전국(戰國) 시대(時代) 초(楚)나라에 무기 상인(商人)이 있었다. 그는 시장으로 창과 방패를 팔러 나갔다. 상인(商人)은 가지고 온 방패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 방패를 보십시오. 아주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창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여기 이 창을 보십시오. 이것의 예리함은 천하(天下) 일품,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 버립니다.」 그러자 구경꾼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예리하기 짝이 없는 창으로 그 견고하기 짝이 없는 방패를 찌르면 도대체 어찌 되는 거요?」 상인(商人)은 말문이 막혀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다가 서둘러 달아나고 말았다.
矛盾
或問儒者曰, “方此時也, 堯安在?” 어떤 사람이 유가사상을 따르는 자들에게 묻길, “바야흐로 이 때에, 요임금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其人曰, “堯爲天子.” 그 사람이 말하길, “요임금은 천자였습니다.” “然則仲尼之聖堯奈何? 聖人明察在上位, 將使天下無姦也. “그렇다면 즉 공자가 요를 성인이라고 여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인은 밝게 살피고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장차 천하로 하여금 간사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今耕漁不爭, 陶器不窳, 舜又何德而化. 농업과 어업에 싸움이 없고, 동쪽에서 나는 도자기들이 조잡하지 않았다면, 순이 또한 어떻게 덕으로써 교화를 하였겠습니까? 舜之救敗也, 則是堯有失也, 賢舜則去堯之明察, 聖堯則去舜之德化, 不可兩得也. 순이 어그러진 것을 구제했다면, 즉 이는 요임금에게 실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임금을 어질다고 여긴다면 즉 요임금의 밝게 살핌이 없어야 하고, 요임금을 성인으로 여긴다면 즉 순임금의 덕으로써 교화함이 없어야 합니다. 양 쪽을 모두 얻을 수는 없습니다. 楚人有鬻楯與矛者, 譽之曰, ‘吾楯之堅, 莫能陷也.’ 초나라 사람이 방패와 함께 창을 팔았는데, 자랑하면서 말하기를, ‘내 방패는 아주 견고해서, 어느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다.’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또 그 창을 자랑하며 말하기를, ‘내 창은 아주 예리해서, 이 창으로 뚫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或曰, ‘以子之矛陷子之楯何如?’ 혹자가 말하길, ‘당신의 창으로써 당신의 방패를 뚫어보면 어떻습니까?’ 其人弗能應也. 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夫不可陷之楯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창은 이 세상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今堯 · 舜之不可兩譽, 矛楯之說也.” 지금 요임금과 순임금을 함께 칭찬할 수 없는 것도, 창과 방패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韓非子 · 難一》)
모순론의 등장배경
1920년 진독수를 알게 되고 중국 공산당 창립대회에 호남성 대표로 참가해 중앙위원이 된 이래 모택동은 장래 혁명의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혁명이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그가 독서에 파묻히게 된 원인이었다. 또한 모택동은 독서에서 얻은 이론적 지식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첫 시작이 1925년이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이미 호남의 농민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토대로 호남・강서 지역에서 추수폭동(秋收暴動)을 지도하는 등 농민운동을 주도하며 활발하게 혁명운동을 실천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거듭된 농민운동의 실패로 혁명의 기운이 퇴조하자, 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가 소비에트 근거지를 만들어 공농홍군(工農紅軍)을 조직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고는 이 홍군의 지지 아래 1931년 강서성 서금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설립해 주석에 선출됐지만, 중국 국민당군이 포위작전을 벌이며 소비에트 지역에 대한 토벌을 단행하자 이만오천 리에 이르는 장정을 떠나게 됐다. 그러는 도중 귀주성 준의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당의 주도권을 잡으며 섬서성 연안에 근거지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며 농민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의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총동원해 1937년에 「모순론」과 「실천론」을 집필했고, 이러한 이론의 정립은 러시아식 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른 중국식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들 두 가지 이론은 중국 혁명의 절대적인 이론적 기초가 됐고, 혁명 성공 후에 모택동의 정권 유지 또는 정권 재창출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모택동의 모순론
「모순론」은 1937년 연안에 있는 항일군정대학 철학과에서 강의한 내용 중의 한 부분이다. 전문 약 2만 3,000자에 이르는 것으로, 이 강의 내용 중 제3장 제1절의 '모순통일법칙'을 수정해 완성한 것이다. 「모순론」도 여러 곳에서 출판된 바 있으나, 모택동이 친히 교정해 1951년 4월 1일자 「인민일보」를 통해 발표한 것이 가장 정확하다. 「모순론」이란 레닌이 주장한 '대립물 통일의 법칙'이라는 변증법관을 모택동이 받아들여 이를 '모순'이라는 이론으로 체계화한 것을 말한다.
모순론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은 유물변증법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다. 이 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철학적 문제를 논의하여야하며 교조주의사상을 숙청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두가지 세계관
세계의 발전법칙에 관한 인류의 인식사는 서로 대립적인 세계관을 지닌 형이상학적인 견해와 변증법적 견해가 있다. 형이상학적 견해(현학)은 오랫동안 관념론에 속해 온,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이란 고립적, 정지적 및 일면적 관점, 다시말해 세계의 일체 사물의 형태와 종류를 모두 영원히 서로 고립되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양적 증감과 장소의 이동에 불과한 것이며 이의 원이은 사물의 내부가 아닌 사물의 외부(외적인 힘의 충격)에 있다. 형이상학자들은 자본주의적 착취, 자본주의적 경제, 자본주의적 사회의 개인주의적 사상 등은 영원히 변함없이 존속하는 것이라보고 사회 발전의 원인을 사회 밖에 있는 지리, 기후 등의 조건으로써 설명하였다. 따라서 사물의 내적 모순으로 인하여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유물변증법적 학설을 부인하였고, 때문에 사물의 질적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한 질이 다른 질로 변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이 사상이 기계적 유물론과 19세기 말엽 및 20세기 초의 속류 진화론으로 표현되었다. 유물론변증법적 세계관은 사물의 내부로부터 한 사물의 다른 사물에 대한 관계로부터 사물의 발전을 연구할 것을 주장한다. 즉 사물의 발전을 사물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자기운동으로 간주하며 또 모든 매개 사물의 운동은 모두 그 주위의 다른 사물과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물 발전의 근본원인은 사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부에 있으며 사물에 내재하는 모순성에 있다. 어떠한 사물에나 그 내부에는 모두 이런 모순성이 있기 때문에 사물은 운동하며 발전하게 된다. 한 사물의 다른 사물과의 상호연관 및 상호영향은 사물발전의 이차적인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이 유물변증법은 형이상학적인 기계적 유물론 및 속류 진화론적 외인론 또는 피동론을 결정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각종 사물의 모순운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모순의 보편성
모순의 특수성
주요모순과 모순의 주요 측면
모순의 제 측면의 동일성과 투쟁성
모순에서 적대가 차지하는 위치
결론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중국식 혁명이론의 완성 (모택동-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 2009. 3. 25.,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