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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예술철학, 현대미술, 그리고 영상예술에 관심이 많다. 또한 야망이 크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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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문화학과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다. 인권운동, 예술철학, 현대미술, 그리고 영상예술에 관심이 많다. 또한 야망이 크다.<br/>
 
(<s>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진학을 거세게 반대한 아버지 덕분에</s>) 재수를 걸친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 공부 끝에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부를 다니면서 중국어문화학과에서 쌓은 인문 지식이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되었고,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br/>
 
(<s>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진학을 거세게 반대한 아버지 덕분에</s>) 재수를 걸친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 공부 끝에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부를 다니면서 중국어문화학과에서 쌓은 인문 지식이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되었고,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br/>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 1학년 때는 전공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본래 관심 많던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주로 학교 밖을 돌아다니며 대학 인권 운동판에서는 나름 이름과 얼굴을 팔고 다녔다. 광저우 중산대학교 정부학과로 교환학생 파견 후에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s>믿기지 않겠지만</s>)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현지에서 가명을 쓰고 인권운동을 했다. (''검색 능력이 좋으면 광동성 쪽 일간지에서 얼굴이 실린 기사를 몇 부 찾을 수도 있다. 줄곧 시위대 맨 앞에 서 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단체와 멤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다. 다만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명과, 각박한 세상 속에서 외면하게 되는 여러 처지에 대한 고민 등을 안고 있다.<br/>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 1학년 때는 전공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본래 관심 많던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주로 학교 밖을 돌아다니며 대학 인권 운동판에서는 나름 이름과 얼굴을 팔고 다녔다. 광저우 중산대학교 정부학과로 교환학생 파견 후에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s>믿기지 않겠지만</s>)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현지에서 가명을 쓰고 인권운동을 했다. (''검색 능력이 좋으면 광동성 쪽 일간지에서 얼굴이 실린 기사를 몇 부 찾을 수도 있다. 줄곧 시위대 맨 앞에 서 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단체와 멤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다. 다만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명과, 각박한 세상 속에서 외면하게 되는 여러 처지에 대한 고민 등을 안고 있다.<br/>
 
가까운 미래에 주서우라는 이름 세 글자가 곧 브랜드이자 서울시립대 그리고 중국어문화학과의 자랑이 되는 날이 오면, 미래의 후배님들이 업데이트 해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가까운 미래에 주서우라는 이름 세 글자가 곧 브랜드이자 서울시립대 그리고 중국어문화학과의 자랑이 되는 날이 오면, 미래의 후배님들이 업데이트 해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2017년 11월 14일 (화) 02:47 판

프로필

주서우
기본 정보
성명 주서우
출생지 유년기를 전라도 광주, 청소년기를 충청남도 천안에서 보냈다.
취미와 특기 수영, 기타연주, 검도
교내외 활동

2015학년도 옌타이 c-camp 참가

2016학년도 2학기 ~ 2017학년도 1학기 광주 중산대학 교환학생
특이사항 불의를 참지못함
관심있는 중국분야 중국현대미술, 홍콩, 왕가위, 아트바젤 홍콩, 장국영

중국어문화학과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다. 인권운동, 예술철학, 현대미술, 그리고 영상예술에 관심이 많다. 또한 야망이 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진학을 거세게 반대한 아버지 덕분에) 재수를 걸친 대학수학능력검정시험 공부 끝에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부를 다니면서 중국어문화학과에서 쌓은 인문 지식이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되었고,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틀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 1학년 때는 전공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본래 관심 많던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주로 학교 밖을 돌아다니며 대학 인권 운동판에서는 나름 이름과 얼굴을 팔고 다녔다. 광저우 중산대학교 정부학과로 교환학생 파견 후에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믿기지 않겠지만)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현지에서 가명을 쓰고 인권운동을 했다. (검색 능력이 좋으면 광동성 쪽 일간지에서 얼굴이 실린 기사를 몇 부 찾을 수도 있다. 줄곧 시위대 맨 앞에 서 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단체와 멤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다. 다만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명과, 각박한 세상 속에서 외면하게 되는 여러 처지에 대한 고민 등을 안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주서우라는 이름 세 글자가 곧 브랜드이자 서울시립대 그리고 중국어문화학과의 자랑이 되는 날이 오면, 미래의 후배님들이 업데이트 해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