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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문해자에서는 南은 초목이 남쪽으로 뻗을 수록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아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하였다. 남녘 南, 맡길 任, 아이밸 姙자를 서로 첩운자로 보았고, B.Karjgren의 상고추정음에 따르면 세 자형의 상고운이 동일하다. 任을 아이밸 姙의 가차자인데, 이것이 임신의 뜻이었으므로 '남쪽은 해가 따뜻하여 만물이 왕성하게 회임하는 방위'라는 사유의 확장으로 인해 南을 남쪽을 나타내는 방위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여기서 나아가 南은 은유적으로 따뜻하고 쾌적한 곳, 고향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ref>이돈주, 『한자, 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고대문화』,pp.298-9.</ref> 갑골 기록에 따르면 南은 방위 뿐 아니라 선왕의 이름(<合>1823), 어린 돼지(<合>14135正), 지명(<合>6473) 등을 나타내기도 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 ||
==文化== | ==文化== | ||
唐蘭은 南의 갑골자에 대해, 『甲骨文字詁林』에서 “자형 상으로 글자의 윗부분은 수식을 나타낸 것이고, 아랫부분은 기와형의 물건을 거꾸로 매달아 입구를 아래로 하게 한 형상을 상형한 것이다. 그 물건의 중간이 비었으므로 그것을 쳐서 음악이 되게 했을 것이다. 상고에는 陶器류의 악기가 매우 많았다.” 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상대의 종은 음정이 적어서 악장 상에서 보조악기로만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에는 종을 고정대에 매달고 한 사람이 여러 종을 동시에 칠 수 있도록 발전되었다. <ref>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pp.31-33.</ref> | 唐蘭은 南의 갑골자에 대해, 『甲骨文字詁林』에서 “자형 상으로 글자의 윗부분은 수식을 나타낸 것이고, 아랫부분은 기와형의 물건을 거꾸로 매달아 입구를 아래로 하게 한 형상을 상형한 것이다. 그 물건의 중간이 비었으므로 그것을 쳐서 음악이 되게 했을 것이다. 상고에는 陶器류의 악기가 매우 많았다.” 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상대의 종은 음정이 적어서 악장 상에서 보조악기로만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에는 종을 고정대에 매달고 한 사람이 여러 종을 동시에 칠 수 있도록 발전되었다. <ref>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pp.31-33.</ref> | ||
+ | ==출처== | ||
+ |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 ||
+ | 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 ||
+ | 이돈주, 『한자, 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고대문화』, 태학사,2006. |
2018년 12월 16일 (일) 02:55 판
語源
갑골문 자형에 따르면 南 끈으로 매단 종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 밖에도 따로 채를 쥐고 이 악기를 치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남쪽을 의미하게 된 것은 발음상의 유사성으로 인한 가차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악기가 상나라의 남부지방에서 전래됐거나 연주할 때 이것을 남쪽에 배치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1] 설문해자에서는 南은 초목이 남쪽으로 뻗을 수록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아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하였다. 남녘 南, 맡길 任, 아이밸 姙자를 서로 첩운자로 보았고, B.Karjgren의 상고추정음에 따르면 세 자형의 상고운이 동일하다. 任을 아이밸 姙의 가차자인데, 이것이 임신의 뜻이었으므로 '남쪽은 해가 따뜻하여 만물이 왕성하게 회임하는 방위'라는 사유의 확장으로 인해 南을 남쪽을 나타내는 방위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여기서 나아가 南은 은유적으로 따뜻하고 쾌적한 곳, 고향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2] 갑골 기록에 따르면 南은 방위 뿐 아니라 선왕의 이름(<合>1823), 어린 돼지(<合>14135正), 지명(<合>6473) 등을 나타내기도 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文化
唐蘭은 南의 갑골자에 대해, 『甲骨文字詁林』에서 “자형 상으로 글자의 윗부분은 수식을 나타낸 것이고, 아랫부분은 기와형의 물건을 거꾸로 매달아 입구를 아래로 하게 한 형상을 상형한 것이다. 그 물건의 중간이 비었으므로 그것을 쳐서 음악이 되게 했을 것이다. 상고에는 陶器류의 악기가 매우 많았다.” 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상대의 종은 음정이 적어서 악장 상에서 보조악기로만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후에는 종을 고정대에 매달고 한 사람이 여러 종을 동시에 칠 수 있도록 발전되었다. [3]
출처
정현정, 「甲骨文에 나타난 商代의 音樂과 舞蹈」,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이돈주, 『한자, 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고대문화』, 태학사,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