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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01:16 판
양귀비 (楊貴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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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양옥환 (楊玉環) |
출생 |
719년 |
국적 | 당나라 |
별칭 | 비구니 시절 법명은 태진(太眞) |
직업 | 당 현종의 후궁 |
종교 | 불교 → 도교 |
배우자 |
당 현종 이융기 |
친척 | 양국충(오빠), 양현교(숙부) |
개요
양귀비는 당나라 때 현종의 귀비로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알려진 여인이다. 그는 절세미인에 총명했으며, 세계 3대 미녀,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출생
양귀비는 본명을 양옥환(楊玉環)이라고 하며, 719년 당나라 촉주(蜀州)[1]에서 태어나 포주(蒲州)의 영락(永樂)[2]에서 자랐다.
양옥환의 부친 양현염(楊玄琰)과 모친은 양옥환이 어렸을 때 죽어서 양옥환은 하남성 낙양에서 하급관리를 하던 숙부 양현교(楊玄璬) 의 집에서 얹혀살게 되었다. 숙부는 가정교육에 엄격해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양옥환은 많은 시문을 외웠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와 음률, 가무에도 재주가 있었다.
왕비 시절
당시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수왕 이모라고 했다. 수왕은 양옥환의 미모에 빠져 구애를 하였고, 양옥환은 수왕의 비가 되었다.
귀비 시절
개원 24년(736년), 무혜비가 서거하였다. 현종은 나이가 61세가 되던 해, 우연히 그의 며느리인 양옥환을 만났으며, 그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었다. 현종은 양옥환이 자신에 아들의 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손에 넣었으며, 양옥환은 귀비가 되었다.
양옥환이 귀비가 되자 양씨 일종은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양옥환의 오빠 두 명이 관직을 받았고, 언니 3명은 부인에 봉해졌다. 먼 당형제인 양조는 금위군참군에 봉하였다. 양조는 훗날에 재상에 지위까지 올랐는데 이가 바로 양귀비의 외척 양국충이다. 양옥환과 현종은 음악을 좋아하여 자주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현종은 당나라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도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양옥환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겼다.
또한 양옥환과 현종에는 수양아들이 있었다. 그는 안록산이라는 사람이인데, 당시 북부 변경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양옥환보다 10세나 나이가 많았다.
서거
755년 안록산은 ‘간신 양국충을 주벌한다’는 명분으로 범양[3]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남하하여 장안으로 향했다. 756년 6월 수도를 방어하는 최후의 거점을 함락하였다(안사의 난). 현종과 양옥환, 양국충 일족, 태자부부, 황족과 환관은 병사의 호위를 받아서 은밀히 궁을 빠져나가 촉으로 도망갔다. 다음 날 현종 일행이 장안 서쪽의 마외파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호위하던 병사들이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된 양국충과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하들의 요구에 현종도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현종은 양귀비를 껴안으며 이별을 한 뒤 신하인 고력사에게 그녀를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양옥환은 현종이 무사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비단에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으니, 이때 양옥환은 38세였다.
기타
-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고 일컬어 진다.
- 그녀의 키는 155cm였는데 몸무게가 65kg에 달했다고 한다. 아주 건강한 체형이다.
-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는 전족의 영향으로 현종의 발 위에서 놀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