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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2일 (화) 22:24 판
개요
이궤는 중국국가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청동기로써, 국가 차원에서 출국을 금지한 64점의 귀중한 문물 중 하나다. 높이는 28센치미터이며 구경은 22센치미터이다. 윗부분은 원형에 크게 벌어진 입구에 통통한 배처럼 볼룩한 모양을 지니고 있으며, 양쪽에는 짐승의 귀와 그 귀에 귀고리가 두 개 달려 있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아랫부분은 네모난 받침대가 있어 듬직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현존하는 서주 청동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기물이다.
궤簋란?
궤簋는 상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까지 유행한 청동기 중 하나다. 주로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었으며, 벼와 수수 등을 삶아 익혀서 담았던 옛날 그릇이다. 상주商周시대에는 궤簋는 음식을 담는 그릇의 용도 이외에 중요한 예기로서 향응과 제사를 지낼 때 짝수로 배열되어 鼎정과 함께 사용되었다.
출토
1976년 3월 상순에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県의 영구공사서단대대零口公社西段大隊가 경작하던 중 동기 여러 점을 발견하였다. 보고를 받은 임동현의 문화관 관원이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출토 지점이 2만 여 제곱미터에 걸친 주나라 유적의 한 구획이었으며, 이미 출토된 뒤여서 발굴된 당시 상황은 분명하지 않지만 절벽 위에 동기가 매장되어 있던 깊이 2미터, 너비 70센치미터 크기의 움막이 있었다. 출토된 동기는 60여 점이었는데, 그 가운데 네모 반듯한 대좌台座 위에 녹청으로 뒤덮인 궤로 불리는 제기 하나가 있었다, 그릇 안쪽 바닥에는 4행 32자의 명문이 주조되어 있었으며, 이후 명문의 보이는 그릇을 제작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 동기는 이궤로 불린 것이다.
이궤의 특징
외관
이궤의 가운데 부분과 대좌台座부분에는 모두 뇌문문늬로 되어있고, 그 위에는 짐승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으며, 대좌부분에도 흡사한 짐승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큰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짐승의 모습이 장엄함을 보여 준다. 자세히 보면 이궤의 원형의 다리부분에는 두루 한 바퀴 용 모양의 무늬로 되어 있으며 대좌의 네 구석에 매미무늬를 장식하였다.
명문
원문
珷征商, 隹甲子朝, 歲
鼎, 克䎽, 夙又商. 辛未
王在闌師錫又事利
金. 用作檀公寶尊彝.
해석
주무왕武王께서 상商나라를 정벌하였을 때는 갑자일 아침 목성이 나타날 때 쯤이였다.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신속하게 상商나라 땅을 점령하였다. 신미일에 무왕武王께서는 ‘간’ 땅에 머무시면서 왕을 모시고 참전했던 ‘이利’에게 청동을 상으로 하사하셨다. 이를 기념하여 ‘이利’는 ‘단공檀公’의 제사에 사용할 진귀한 제기를 만들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후쿠다 데쓰유키,『문자의 발견 역사를 흔들다』, 너머북스, 2016.
- 張光直,『중국 청동기 시대 上』, 학고방,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