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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병거행(兵車行)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심각하게 묘사한 시들이 많으며 시로 엮은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라고 일컫는다. | 대표적으로 병거행(兵車行)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심각하게 묘사한 시들이 많으며 시로 엮은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라고 일컫는다. |
2016년 5월 15일 (일) 22:41 판
두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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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당나라 |
별칭 |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별명(別名)은 시성 |
직업 | 시 (문학) |
주요 작품 | 병거행(兵車行), 절구 강벽(江碧), 북정(北征) 등 |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중국 고대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시성(詩聖)이라고 부른다.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하며, 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주제로 시를 쓴 민중시인이다.
생애
두보는 허난 성의 궁이 시에서 태어났다. 두보는 원래 정치에 발을 들이려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의 생애는 755년에 발생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안사의 난 이전에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을 즐기며 관리로서의 준비를 했다. 24세 때 진사 시험에 낙방한 후 부친을 따라 산둥에 가서 이백, 고적(高適) 등과 함께 시를 읊고 자연을 즐기며 친교를 돈독히 했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보는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안사의 난 발발 이후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민중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768년에 악양에 적을 옮긴 이후 그의 삶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악양과 담주(潭州)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770년 58세로 일생을 마쳤다.
작품
대표적으로 병거행(兵車行)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을 심각하게 묘사한 시들이 많으며 시로 엮은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라고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