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문예강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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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테 <솔용왕> | + | 왕테 <솔용왕>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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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바이위 <무적삼용사>, <불빛은 앞에> | 류바이위 <무적삼용사>, <불빛은 앞에> | ||
2016년 6월 3일 (금) 22:15 판
요약
1942년 5월 2일~23일 3회에 걸쳐 연안에서 열린 문예좌담회에서 중국문예계가 당면한 과제에 대한 모택동의 발표를 줄여 이르는 말. =연안문예좌담회에서의 강화, 문예강화
내용
1942년 5월 2일의 문제제기와 23일의 결론으로 이루어진 연안문예강화의 내용은 먼저 서론 부분에서 문예 활동가의 태도, 활동대상, 활동, 학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좌담회의 취지와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는 우리의 문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문예계의 통일전선, 문예비평의 기준, 정풍운동의 필요성에 관한 관점과 실천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내용의 핵심을 말하자면, 문예를 '문(文)과 무(武)의 두 전선' 중 하나로 규정하고, 따라서 '혁명사상의 일환'인 문예는 노동자·농민·병사의 인민대중 입장에서 그들에게 봉사해야 하며, 질의 향상보다는 보급을 통해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문예를 창조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 민중의 현실 투쟁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개조하고 민중과 결합하여 진정한 혁명문예가로 변화해야 하며, 여기에는 예술적 기준보다도 정치적 기준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화와 문학예술은 반드시 어떤 계급과 정치노선에 속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초계급의 예술, 정치와 병행하거나 상호 독립된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학 예술은 정치에 예속되어야 하고
정치에 복종되도록 통일되어야 한다. - <문예강화>
배경
항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제 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낸 중국공산당의 통치 지역인 연안 등의 해방구에는, 대량으로 주둔하던 노농홍군(工農紅軍, 국민혁명군 제8로군) 외에도 국통구의 억압적인 현실에 절망한 많은 지식인들이 광명을 찾아 흘러 들어왔다. 그러나 해방구는 1940년대 초에 일본군의 공격과 국민당군의 봉쇄정책에 의해 군사적·경제적 면에서 극심한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1942년에서 1943년에 걸쳐 대대적인 생산운동과 정풍운동을 통해 물질적 곤란을 극복하고 공산당을 사상적·조직적으로 강화하고자 하였다. 연안문예좌담회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전개된 정풍운동의 일환으로서, 주로 연안의 문화 지식인·예술가들을 정신적·사상적으로 무장하고 개조하기 위해 개최된 것이었다.
의의
연안문예강화는 당시 해방구에 있던 공산당원 및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이후의 이른바 인민문학의 형성과 전개에 결정적 작용을 한 역사적 문헌이다.[1]
실제로 문예강화 이후 해방구의 문학 분야에서는 이른바 노농병 방침에 따라 새로운 대중적 제재와 주제를 갖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2] 보통 '인민문학'으로 불리는 이들 작품들은 민족적·계급적 투쟁 및 노동과 생산에 관련된 제재를 묘사함으로써, 해방구 민중의 삶과 투쟁을 그들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표현해낸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자오수리(趙樹理)가 있다.
<문예강화>는 문학인과 민중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야오(王瑤)의 표현을 빌려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이 비로소 5·4 신문학의 수용 대상이 되기 시작한", "5·4 신문학과 농민과의 상호 격절의 역사를 마감한" 것에서 진정한 문학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요약하면 <문예강화>는 5·4기 이래 중국 현대문학이 끊임없이 추구해 온 문예의 대중화, 민족적·민중적 리얼리즘 문학의 본격적인 실천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인 셈이다.
한편 연안문예강화에는 민중적 리얼리즘론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창작의 주체인 지식인 작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 그리고 리얼리즘 문학의 진실성과 예술적 독자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전통적 서민의 문학세계 또는 농민적 감성과 표현방식에 편향된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문예강화>는 훗날 '주관론'과 충돌을 일으킨다. <문예강화> 이후 연안지구에서 나온 작품들은 예술성보다 정치성을 우위에 두고 창작되었다. 모든 문예활동에 대한 평가 또한 <문예강화>에서 제시된 기준을 가지고 행해졌다. 이에 대해 후펑과 같은 문인은 '주관론'을 주장하며 문예사상 논쟁을 일으켰다.
작품들
자오수리 <샤오얼헤이의 결혼>,<리유차이판화>,<리쟈좡의 변천>
쿵줴 <해방된 한 여인의 이야기>, <신아녀영웅전>
위련 <조씨는 시골로>
왕테 <솔용왕>
순리 <살루>, <촌락전>, <하화정>, <노화탕>
류바이위 <무적삼용사>, <불빛은 앞에>
참고 자료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현대의 중국문학』, 백영길
『중국문학사』, 김학주
「연안문예강화」, 홍지형,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