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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제는 주대의 정전법을 모델로 삼아 만든 토지제도이다. 전국의 토지를 모두 국가의 소유로 해 매매를 금지시킴과 동시에 남자 8명 이하의 집에서는 1정 즉 900무를 한도로 정한 후, 초과 토지는 친족이나 향당의 토지가 없는 자에게 분여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대적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호족과 관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겨우 3년 만에 폐지되어버렸다. | 왕전제는 주대의 정전법을 모델로 삼아 만든 토지제도이다. 전국의 토지를 모두 국가의 소유로 해 매매를 금지시킴과 동시에 남자 8명 이하의 집에서는 1정 즉 900무를 한도로 정한 후, 초과 토지는 친족이나 향당의 토지가 없는 자에게 분여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대적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호족과 관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겨우 3년 만에 폐지되어버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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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1일 (화) 23:22 기준 최신판
왕전제는 주대의 정전법을 모델로 삼아 만든 토지제도이다. 전국의 토지를 모두 국가의 소유로 해 매매를 금지시킴과 동시에 남자 8명 이하의 집에서는 1정 즉 900무를 한도로 정한 후, 초과 토지는 친족이나 향당의 토지가 없는 자에게 분여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대적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호족과 관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겨우 3년 만에 폐지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