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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 16:06 기준 최신판
3성은 각각 업무를 분담했는데 중서성은 주로 황제 조칙의 기안을 담당하였다. 장관은 중서령이고 그 밑에는 중서시랑, 중서사인 등의 관원이 있었다. 문하성은 중서성이 기안한 정령(政令)에 대한 심의를 담당하였는데, 기안된 조칙에 타당치 못한 점이 발견되면 봉박(封駁)을 행하여 중서성으로 돌려보냈다. 장관은 시랑이고 그 밑에는 문하시랑, 급사중 등이 있었다. 상서성은 정령의 시행을 관장하였는데 이는 전국 정무 관리기구의 핵심이었다.
당 대 국가 정령을 반포하는 과정은 우선 중서성의 관원이 하달한 조서의 내용을 분담하여 기안하고, 시랑·중서령의 심사를 거친 후에 문하성으로 보내어 급사중·문하시랑의 심의를 받게 되는데, 만일 반대의견이 있으면 봉박하고 되돌려 보내 다시 기안할 수 있게 했다. 만약 문하성에서 의논을 통해 조서의 내용이 통과되면 시랑·시중이 함께 서명하고 다시 상서성으로 보내 시행하도록 했다. 당 대에 3성을 설치한 목적은 3성간의 상호 직무분담과 상호 견제를 통하여, 한 성의 과도한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정령의 결제와 시행 과정에서의 과실을 적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무 과정에서 중서·문하가 조직의 기안과 심의를 분담함으로써 생기는 결함도 있었다. 만약 두 성의 의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공문의 왕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당 초부터는 두 성의 장관이 합동 처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상서성은 최고 행정 집행기구였다. 중앙부터 지방까지 모든 업무가 이곳에서 총괄했으므로 직책이 과중하고 사무가 번잡하고 기관이 방대했으며 여러 속관도 두었다.
참고 문헌
<<중국통사>>, 범문란, 우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