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의 반란은 청조의 권력이 흔들리기 시작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청대 지방의 세리(稅吏)들이 가난에 찌든 농민들을 수탈하면서 백련교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종교집단인 백련교는 반청의식(反淸)을 품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백련교는 청의 ‘견벽청야’의 정책으로 진압이 되었지만 청조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주고, 팔기군의 명성을 하락시키는 등 청나라의 위상을 많이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