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
語源
죽(竹)이 의미를, 율(聿)이 소리를 나타낸다. 필기구인 붓을 나타낸다. 이 붓(筆)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붓대를 가진 필기구이다. 원래는 손으로 붓을 쥔 모습인 율(聿)을 사용하여 붓을 나타냈는데, 나중에 죽(竹)을 더해 筆이 되었다. 간화자에서서는 笔라고 표기한다. 붓을 뜻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필기구와 문구의 통칭이 되었으며, 붓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에서 기술하다, 서사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1]
文化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글을 쓸 때, 끝이 뾰족하고 부드러운 붓을 사용했다. 갑골문에도 붓과 관련된 글자들이 보이는데, 상나라 사람들도 붓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기구로 붓을 사용한 것은 한자의 형태나 구성, 그리고 쓰는 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붓을 사용할 때는 자획의 두께나 짜임새를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따라서 숙련된 서예인들만이 자유롭게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예술성을 평가받기도 하였다.[2]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붓은 호남성 장사(長沙) 교외에 잇는 전국시대 초(楚)의 유적에서 발견된 장사필(長沙筆)이다. 전체 길이는 약 21cm이며, 붓대는 대나무를 썼고, 붓봉에는 토끼의 털을 다발지은 끝을 끼워서 가는 실로 묶고, 그리고 옻(漆)으로 굳혀 놓았다. 옛날의 전설에서는 붓을 처음 만든 사람은 진시황 때의 진나라 장군 몽염(蒙恬) 장군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당나라의 유명한 문장가인 한유가 붓을 의인화한 <모영전(毛穎傳)>을 짓기에 이른다. 이 글이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실려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붓의 기원을 몽염에게서 찾게된 것이다. 그러나 장사필의 발견으로 붓이 진시황 시대보다도 앞서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3]
중국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서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이다. 질이 아주 좋은 붓 하나를 사려면 교사나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을 투자해야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몇 년 혹은 수십 년간 쓸 수 도 있다. 붓의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작은 붓은 몇그램에 불과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40킬로그램이나 나갔다. 1950년대 일어난 문자개혁을 통해, 최초의 ‘聿’자에서 붓을 나타내는 부분이 ‘毛’자로 대체됐다. 이는 아주 멋진 발상이다. 붓은 여전히 대와 동물들의 털로 만들어지지 않는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