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毛女
감독 | 王滨、水华 |
배우 | 田华、李百万、陈强、张守维 |
상영연도 | 1950 |
제작 | 东北电影制片厂 |
1932년 허베이성 황자촨(黃家川), 이곳의 토지는 거의 전부 지주 황스런(黄世仁) 집안의 것이었다. 소작농 양바이라오(杨白劳)의 딸 시얼(喜儿)과 총각 왕다춘은(王大春)은 추수 후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루는 시얼과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는데 지주 황스런과 앞잡이 무런궤이(穆仁贵)를 마주쳤다. 황스런이 시얼을 희롱하는데 시얼은 그를 무시했다. 황스런은 노여워하며, 집에 돌아가자마자 연말에 빚을 명목으로 시얼을 차지할 계획을 세웠다. 추수가 끝난 뒤 양바이라오는 계산해보니 황스런에게 이자를 갚고 나서도 딸의 혼사를 치를 수 있어 기뻤다. 섣달 그믐날 밤, 양바이라오는 7위안 50전을 들고 황스런 집에 가서 돈을 갚았다. 황스런은 태도를 바꾸며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지 않으면 시얼로 대신해야한다고 하였다. 양바이라오는 변명할 길이 없었고, 강제로 시얼의 몸을 파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된다. 양바이라오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자살해버렸다. 정월 초하룻날 시얼은 황씨네 집에 끌려가 황스런의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그녀는 온갖 학대를 받아가며 다춘과 재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시얼은 황스런에게 강간을 당하고 만다. 시얼이 자살하려는데 장씨 둘째 아주머니(张二婶)이 말렸다. 다춘은 소식을 듣고 조씨 아저씨와 장씨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시얼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으나 황씨네 집에 발각돼 시얼은 도망가지 못했다. 다춘은 산시 북부(陕北)의 홍군에 몸을 의탁하였다. 시얼이 임신을 하고, 황가는 그녀를 더욱 학대하며 방앗간에서 맷돌질을 하게 했다. 황스런은 사건이 발각될까 봐 그의 결혼 전날 시얼을 60원에 팔았다. 시얼은 소식을 듣고 밤새 도망쳤다. 황스런이 바짝 뒤쫓다가 강가에서 시얼의 신발 한 짝을 발견하고는 시얼이 이미 익사한 걸로 여겼다. 시얼은 갈대밭에 숨어 있다가 황가네 가족이 멀리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산으로 도망쳐 동굴에 숨어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산에서 귀신같이 살다 머리까지 희끗희끗해졌다. 한번은 그녀가 제물을 훔치다 고향사람에게 발각되었는데 '백발여도사(白毛仙姑)'로 잘못 알려졌다. 7.7 사변이 일어나 팔로군이 북상하여 이 마을을 지나갔다. 다춘이 마을에 남아 토지개혁을 지도하였다. 황스런은 '백발여도사'의 전설을 빌어, 헛소문을 만들어 농민항일과 임대료 감면 투쟁에 타격을 주고자 하였다. 다춘은 황스런의 계략을 들추어내기 위해 절에 숨어서 추적하다가 시얼을 발견한다. 진실은 밝혀졌고, 투쟁회에서 황스런과 그의 앞잡이들을 쓰러뜨리고 시얼을 위해 복수하고 억을함을 풀어주었다. 시얼은 다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출처
https://kkuan.com/movie/%E7%99%BD%E6%AF%9B%E5%A5%B3(1950)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UrVcoyk1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