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철회의
염철회의
염철회의는 유불릉시기 권력이 외조에서 내조로 이양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염철회의를 주재한 내조의 권력자(곽광)들은 각지의 현량과 문학 60여 명을 모아 이제껏 전한의 경제 정책을 주도했던 외조의 관료(상홍양)와 염철전매를 비롯한 여러 정책들에 대해 논쟁하도록 하였다.
현량 문학과 관료의 논쟁
현량 문학
현량과 문학들은 농업을 국가의 본업으로 보고 상공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장려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관료들이 실행하였던 염철전매, 균수, 평준법은 국가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으로 이러한 정책들은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하기 때문에 조속히 폐지되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재정 확충을 위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 정책의 폐지가 농민의 삶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관료
현량과 문학들의 의견과 상반되게 관료들은 이적들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드는 재정을 충당하려면 염철전매, 균수, 평준법은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현량과 문학들은 민간의 어려움에 대한 황제의 물음에 「소금과 철, 술 등의 전매를 관리하는 관청과 均輸를 담당하는 관청을 철폐하여 天下와 더불어 이익을 다투지말 것을 청하고, 절약 근검의 모범을 보인 뒤에야 敎化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御史大夫 桑弘羊은 이를 반대하면서, 「鹽鐵酒의 전매와 均輸 등은 국가의 大業으로서 四夷를 제압하여 변방을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재정의 바탕이기 때문에 철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상홍양의 유가 비판
결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논쟁은 결국 별다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끝나게 되었다. 이 합의를 통해 현량과 문학측은 겨우 전국의 술 전매와 수도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삼보지역의 주철관의 폐지라는 결과를 얻었을 뿐이었고, 염철전매, 균수, 평준법은 계속 시행되었다.
의의
현량과 문학들은 염철전매(鹽鐵專賣), 주전매(酒專賣), 평준법과 균수법 등의 폐지를 통해 농업을 진흥시키고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속내를 조금만 더 파헤쳐보면 그들의 의도가 그처럼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경제 정책 시행 이전에 철과 소금을 독점하고, 술을 만들어 팔던 이들은 각 지역의 지방호족과 대상인들이었다. 따라서 경제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많이 본 집단은 일반 백성들이 아닌 지방호족과 대상인들이었고 만약 정책이 폐지된다면 가장 큰 혜택을 볼 집단 또한 그들이었다. 따라서 현량과 문학들의 경제 정책 폐지 주장은 농민들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그 이면에는 지방호족과 대상인들의 이익 대변이라는 속내가 들어있다. 또한 이것은 외조 세력이 상홍양을 필두로 한 내조 권력을 몰아내기 위하여 지방호족 및 대상인 세력과 결탁하였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