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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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鮮卑族) 모용부(慕容部)의 수장으로 훗날 전연(前燕)을 세운 모용황(慕容皝)의 아버지이다. 전연이 건국된 이후 고조(高祖) 선무제(宣武帝)로 추존되었다.
283년에 모용섭귀가 죽자 그의 동생 모용내(慕容耐)가 정권을 장악하고 모용외를 죽이려 하였으나 모용외가 요동으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다. 285년에 모용내가 국인(國人)에 의해 살해되자 모용외가 대인으로 추대되었다. 모용외는 선비족의 우문부(宇文部)와 사이가 좋지 않아 공격하려 하였으나 서진(西晉)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서진과 적대하게 된 모용외는 유주(幽州) 일대를 공격하여 노략질하였다. 서진 무제(武帝)는 모용외를 공격하여 격파하였으나 노략질은 계속되었다. 또한 서기 285년 부여(扶餘)를 공격하여 부여왕 의려(依慮)를 자살하게 하였다. 서진은 부여에 원군을 파견하여 모용외를 격파하였으며, 모용외는 289년에 서진에 복속하였다. 서진은 모용외를 선비도독(鮮卑都督)에 임명하였으며, 모용외는 우문부, 단부(段部)의 침입을 피해 도하(徒河)의 청산(靑山)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294년에는 다시 본거지를 극성(棘城)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