云南
역사
전국시기에는 쿤밍(昆明)일대에 “전(滇)”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운남지역과 귀주지역을 남중(南中)이라고 불렀다. 제갈공명이 남중을 정벌하러 나섰고 운남의 족장을 7번 포획하였는데 7번 다 놓아주었다는 칠종칠획(七纵七获)이라는 유명한 한족들의 미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 남조(南詔) : 당나라 때는 운남 얼하이 지역에 6개의 부락인 6조(詔)가 연맹하여 몽사조(蒙舍詔)를 중심으로 남조(南詔)가 건립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부족들이 연합해서 이루어진 국가로서, 티베트·미얀마어 계통의 오만(烏蠻) 종족이 지배층을 이루었고, 백만(白蠻)이라고 불리는 종족을 융합해 나라를 구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만(烏蠻)은 오늘날의 이족(彛族)과, 백만(白蠻)은 바이족(白族)이나 타이족 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남조는 필요에 따라 티베트나 당과 연합하여 자신만의 세력을 지켜나갔다. 779년에는 지금의 대리로 수도를 옮기고 티베트를 물리친 뒤 사천성 서부, 베트남 북부, 인도와 미얀마, 귀주와 광서 일부까지 세력을 넓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250년간 지속되었던 이 왕조는 정매사(鄭買嗣)의 반란으로 멸망하게 된다.
- 대리(大理) : 그후에 백만 부족 출신으로 알려진 단사평이 남조를 계승하여 대리를 도읍으로 한 대리국(大理國)을 세웠다. 대리국은 남조의 정치체계와 행정조직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그 세력도 남조의 전성기 때와 비슷하였다. 독립왕국으로서 300년간 역사를 이어갔지만 원의 쿠빌라이 칸에 의해 멸망하였고 이 지역에는 운남행성이 세워진다.
명대에는 원의 잔여세력과 운남지역의 세력 가가 연합하여 명과 대립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명의 30만 대군에 의해 처참히 무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명은 여러 제도와 차 무역의 통제를 통해 운남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였고, 한족들도 운남지역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기후
운남성은 남부의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고원 계절풍 기후대에 속한다. 강우가 우기인 6~10월달에 집중되고 그 외 기간은 맑은 날씨가 지속되어 여름과 겨울의 습도차가 큰 편이다. 그중 전동고원의 기후는 사계절이 봄과 같은 특징을 보이는데 특히 운남성의 쿤밍과 따리는 일 년 내내 평균기온이 15도를 웃돌아 봄의 도시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외에도 아한대 고산기후 열대 우림 기후 등이 존재한다. 특히 난창강 연안은 고원의 아한대에서 시작하여 열대우림까지 관통하는 사실 상 지구의 거의 모든 기후대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벵골만과 북부만의 습윤한 해양의 기류 영향으로 강우량이 풍부하고 토지가 비옥하다. 그 결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고등 동식물의 종과 수량이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