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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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선사미술의 특징

선사시대 동굴벽화

선사시대 사람의 정신세계의 내용을 가장 충실히 우리에게 전해주는 자료는 그들이 동굴의 벽에 남겨 놓은 벽화나 암각, 제사유적 등으로써 이러한 자효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 선사인(先史人)의 신앙의 내용이나 형태, 그리고 의식행위(意識行爲) 등을 재정립 해왔다. 인류는 문자를 가지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그림들이 형상 문자화되어 오늘날 인류가 쓰는 문자로 발전되어 온 것이며, 선사인의 그림들은 문자가 없었던 시대의 정서를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미술의 기원은 인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선사시대의 선사인들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도구제작 기술을 갖추고 그들을 거주지로 사용된 동굴의 암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선사미술(Prehistoric Art)은 고고학(考古學)과 선사학(先史學)이 취급하는 선사시대, 청동기시대 혹은 철기시대 미술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암면채화(岩面彩畵), 암화(岩畵), 거석(巨石) 기념물, 토기, 토우, 금속 조각 등 고대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는 미술 문화를 선사미술이라고 지칭한다. 선사미술은 인류의 가장 초기단계 미술로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선사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되었다. 선사미술은 수렵과 다산(多産)을 비는 주술적 기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그들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에서 출발하여 점차 동굴의 벽에 그리는 사람은 누구나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이 계속적으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그만의 독창적인 표현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선사미술의 특징이라면 직설적 표현과 그들의 주술적 세계관 속에 담고 있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미술의 형태로서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원초(原初)의 형태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이 직접 본 것과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들을 거침없이 그려나가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선사미술은 사람과 짐승, 식물, 암석 그리고 삶과 죽음의 근원체(根源體)들과의 완전한 결합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선사미술은 그들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그들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이는 인간과 예술의 근본적 성격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1]

암각화에 대한 고찰

개요

프랑스 라스코동굴 벽화

암각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형식이며, 문자가 출현하기 이전의 가장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수 천 년 전, 심지어는 만 년 전에 바위 위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들은 상고시대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원시사회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원시 암각화가 표현한 것은 대부분 동식물, 채집과 수렵, 방목(放牧), 제사, 성교 등의 황동 장면들인데, 화법이 매우 간결하고 세련되며 질박하고 생동적이다. 많은 작품들이 놀라운 수준을 과시하며 석기시대 원시사회의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20여 개의 나라와 지역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고, 수 백개의 거대한 바위 위에 2천 만 개에 달하는 도상과 부호가 그려져 있었다. 유명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네이버 지식백과 라스코동굴 관련 설명) 및 중국의 내몽고(內蒙古), 영하(寧夏), 신강(新疆), 청해(靑海), 광서(廣西), 운남(雲南), 강소(江蘇) 등지의 암각화는 모두 그 옛날의 신비한 원시세계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2]

정의

암각화(岩刻畵)란 동굴 벽이나 자역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학적인 무늬나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을 말한다. 바위그림,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畫)이라고 한다. 바위 표면에 도구를 사용해 어떤 형상을 새겨 놓은 것과 물감을 이용하여 그려놓은 것을 구분하여 볼 때, 전자는 '암각화'로 후자는 '암채화'로 세분하여 부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울러 '바위그림' 또는 '암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념

암각화는 단순히 형태적인 요소의 그림에 그치지 않고 문자 이전의 상징적인 그림문자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다.

生育神 (岩刻) 네이멍구

몽골의 경우 알타이산맥[3]을 따라 암각화가 분포되어 벨트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고비사막 지대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다. 즉 환경적으로 사람과 동물의 생활터로는 부적합한 공간이다. 암각화는 대체로 산의 하단부터 낭떠러지 같은 상단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는데, 이곳에 그림을 남기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작업해야 된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생활터가 아닌 산지에 암각화를 남긴 것은 이것이 단순히 에술적 차원이 그림이 아닌 선사인들이 제사를 거행하기 위한 특별한 장소를 찾아 선택하였으며 암각화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하나의 행위이자 매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고려대 총장을 지냈던 김정배는 암각화를 “불안정한 생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원행위의 소산”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불안정한 생활이라 함은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생활환경과 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환경을 피하고자하는 소망이 담겨있고 이것은 암각화의 본질과 직결된다.
당시 선사인들은 자연현상에서 오는 두려움을 주술행위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고 그 중 하나가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대상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상징은 단순하게 대상의 대리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표상은 운반하는 것으로 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시함으로써 그 사건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이는 초자연적인 피해로부터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주술신앙을 깃들여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즉 암각화는 단순히 생활상 뿐만 아니라 선사인들의 소망이 담겨있는 주술적인 정신세계를 나타냈으며 암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한 것이다.[4]

제작 시기 및 시대별 특성

인류의 기원을 200만 전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거은 약 2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 이후이다. 그 시대 구분은,
구석기시대 (B.C 8000 ~ B.C 2000년)
신석기시대 (B.C 2000 ~ B.C 1600년)
청동기시대 (B.C 1600 ~ B.C 750년)
철기시대 (B.C 750 ~ A,D 300년)로 분류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암각화

구석기시대 미술은 현상을 재현하며 직접적이고 순수하다. 즉, 시각적 인상의 재현에 의한 사실주의 미술로 볼 수 있다. 끊임 없이 유랑하며 도전해야 하는 생생한 현실에서 삶의 감각은 강렬해졌고,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도 생명력이 넘쳐날 수 밖에 없었다. 구석기인들이 사냥하려는 동물을 벽에 그렸던 것은 그림 속의 동물을 소유한다는 의미로, 그림 속의 동물이 현실의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즉, 그림 속의 동물을 현실 안으로 끌고 나오는 세계인 것이다.

신석기시대 암각화

신석기시대에는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인 표현이 획일적으로 반복되며, 고정된 기호처럼 보이는 표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생명의 구체적이고 생동적 표현보다는 사물에 대한 이념이나 개념적 파악과 표현이 두드러진다. 암각화의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크게 변하여 구석기시대의 암각화를 사실주의적이라고 보았다면, 신석기시대의 암각화는 보다 표현주의적 기법(技法)이 더욱 강렬해졌으며 단순하고 단조로운 추상표현이 나타난다.

청동기시대 암각화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들은 그 대상이 주로 인물, 배, 농경, 전투, 수렵, 어로 광경 등으로 후기에 들어오면서 기하학적 문양이나 단순하고 풍요한 생산을 상징하는 성혈 등의 문양으로, 그 형태와 대상물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기하학적 암각화에선 동심원(同心圓)과 단순한 선각(線刻)인물이 나타나면서, 이들 후기 청동기시대의 뚜렷한 양식이 보인다.

철기시대 암각화

청동기시대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다른 형태의 암각화가 철기 시대 문화기에 계속 제작되어 온다. 철기시대에 와서는 그 암각화의 대상물들이 바뀌면서 특수한 형태로 변해서, 과거엔 전혀 나타나지 않던 싸우는 전사, 기마의 무인상, 또 이동하는 행렬의 광경 등 인간 생활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또한 지도자나 무사 등으로 보이는 민족적 영웅들의 기념비적 암각화도 보인다.[5]

제작 기법

암각화란 바위의 표면을 쪼아 내거나 갈아 파거나 그어서 어떤 형상을 새겨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바위 표면에 도구를 사용해 형상을 새겨놓은 것도 있지만 물감을 이용해 그려놓은 것도 있다. 멀리는 유럽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며, 가까이에는 중국이나 시베리아 각지에 분포하는 암벽 위의 물감그림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물감을 이용해 그린 그린 그림을 암각화와 구분해 암채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암각화와 암채화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로 바위그림 또는 암화라고 쓸 수 있다. 따라서 암각화는 바위그림보다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바위그림보다 하위 개념인 암각화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물감을 이용한 그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바위그림이라고 사용하는 경우 그것을 대체로 암각화를 일컫는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가 암각화라는 한가지 표현으로 부르지만 새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두드려 쪼아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 있고, 쪼아내 뒤에 그 부분을 갈아서 더 깊고 매끈하게 만드는 법이 있다. 또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바위 면을 그어서 가는 석으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새김법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쪼아낸 암각화(pecking), 갈아낸 암각화(grinding), 그어낸 암각화(carving)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암각화의 새김법 분류는 각각 새긴 사람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또 그림의 형태로 구분하면 윤곽선이나 도형 내부를 여러 개의 선으로 분할해 묘사하는 방법과 윤곽선 내부를 쪼거나 갈아내 실루엣처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앞의 것을 선각(線刻), 뒤의 것을 면각(面刻)이라고 부른다. 중국이나 몽골 또는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이 두 가지가 시대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인 선의 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대체로 면각화가 선각화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6]

  1. 김태호,「岩刻畵의 線的 形象 表現 研究」, 국내석사학위논문 中央大學校, 2001, pp.4-6
  2. 한감당(韓鑒堂), 《한자문화 = The culture of Chinese characters》, pp.33-34
  3. 알타이산맥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에 걸친 장대한 산맥으로 좁은 뜻으로는 몽골알타이산맥과 고비알타이 산맥을 가리킨다.
  4. 정혜윤,「몽골 암각화의 이미지를 응용한 패턴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2017, pp.3-4
  5. 김태호, 위의 글, pp.7-10
  6. 김태호, 위의 글, pp.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