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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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我顺着剥落的高墙走路,踏着松的灰土。另外有几个人,各自走路。微风起来,露在墙头的高树的枝条带着还未干枯的叶子在我头上摇动。
微风起来,四面都是灰土。
一个孩子向我求乞,也穿着夹衣,也不见得悲戚,而拦着磕头,追着哀呼。
我厌恶他的声调,态度。我憎恶他并不悲哀,近于儿戏;我烦厌他这追着哀呼。
我走路。另外有几个人各自走路。微风起来,四面都是灰土。
一个孩子向我求乞,也穿着夹衣,也不见得悲戚,但是哑的,摊开手,装着手势。
我就憎恶他这手势。而且,他或者并不哑,这不过是一种求乞的法子。
我不布施,我无布施心,我但居布施者之上,给与烦腻,疑心,憎恶。
我顺着倒败的泥墙走路,断砖叠在墙缺口,墙里面没有什么。微风起来,送秋寒穿透我的夹衣;四面都是灰土。
我想着我将用什么方法求乞:发声,用怎样声调?装哑,用怎样手势?…… 另外有几个人各自走路。
我将得不到布施,得不到布施心;我将得到自居于布施之上者的烦腻,疑心,憎恶。
我将用无所为和沉默求乞……
我至少将得到虚无。
微风起来,四面都是灰土。另外有几个人各自走路。灰土,灰土,……
………………
灰土……
一九二四年九月二十四日。

해제

<걸인>에서 화자인 '나'는 겹옷도 걸치고 있고, 슬퍼보이지도 않는 설인의 구걸을 의심하면서 자신의 구걸 방법을 상상해본다. 걸인의 구걸방식은 벙어리처럼 두 손을 벌리고 손짓을 하는 것이며, 화자는 고민 끝에 무위無爲와 침묵沈默이라는 구걸 방식을 찾아낸다. 최소한 허무라는 것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물론 허무는 무위와 침묵이라는 행위 방식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지만, 루쉰 삶의 궤적을 통해 볼 때, 실천과 외침의 무용성無用性에 대한 자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걸인>의 화자가 혐오하는 것은 걸인이 찾는 대상이 아니라, 찾는 방식과 태도에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찾기 방식에 대한 모색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진지하지도 슬퍼보이지도 않는 구걸의 태도에서 화자는 혐오감을 갖는 것이며, 이는 곧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혐오일 것이다. 작중 화자의 견해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서 보시布施를 받지 못하며,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보시를 베풀 수 없다. 소녀가 상처를 싸매라고 건넨 헝겊 조각마저 받지 못하는 '나그네'의 형상은 이를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걸의 길에 나서야 한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보시의 가능성을 품은 채, 얻게 되는 것이 허무일 뿐이더라도. 그래서 구걸은 삶의 양상을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 공간의 걸인乞人도, 언어를 통해 사물을 찾는 작가도, 악보에서 소리를 찾는 음악가도, 빈 캔버스에서 형상을 찾는 화가도 구걸의 방법만 다를 뿐, 구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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