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주주의
개요
신민주주의론 형성
신민주주의론은 모택동이 1940년경부터 제창하여 이론화한 중공혁명의 지도이론으로 마오이즘의 과도기적 이념이기도 하다. 1940년 1월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이라는 논문에서 “중국혁명의 역사적 과정은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두 단계로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지들이 지도하는 낡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하여 지도되는 새로운 신민주주의 혁명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 혁명은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을 반대하고 독립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하에 광범한 인민이 참가하여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존의 부르주아 혁명이 자본주의 사회 및 부르주아 독재의 국가를 창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하여, 신민주주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하여 영도되고, 제1단계에서는 각 혁명적 계급들이 연합 독재하는 민주공화국 창조를 목적으로 한다고 피력하였다. 마오쩌둥은 그의 논문을 통해 1840년 아편전쟁부터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 중국-프랑스전쟁, 중 ·일전쟁, 무술정변(戊戌政變), 신해혁명(辛亥革命),5 ·4운동, 북벌전쟁(北伐戰爭) 등을 낡은 민주주의 혁명으로 보았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투쟁만이 신민주주의 혁명이 된다고 말하였다. 이 신민주주의 이론은 중국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점령한 초기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의 정신으로 표현되어, 노동계급 ·농민계급 ·소(小)부르주아지 ·민족부르주아지 및 기타 애국적 민주분자들을 망라하였다는 인민민주통일전선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공산주의 혁명론과의 차이
이는 기존의 공산주의 혁명론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기존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된 후에 공산당과 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시킨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그 외의 계층이 상당부분 소외되거나 배제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시키기에는 노동자의 수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모택동은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던 인민혁명 노선을 일부 수정하여 중국의 현실에 맞추게된다.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시키려면 광범위한 통일노선을 조직하여 노동자, 농민 뿐만 아니라 지식인, 소부르주아, 민족부르주아, 애국적 민주분자, 진보적 민족주의자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공산주의 혁명가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도있다.
주요 내용
신민주주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민주주의 혁명의 성격은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일반적인 구식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아니라 특수한 신식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다. 둘째, 신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각 혁명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 농민, 지식분자와 기타 소자산계급들의 연합독재가 실시되는 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셋째, 신민주주의는 자본을 통제하고 평등한 토지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대은행, 대공업, 대상업은 공화국의 국가소유로 삼고, 필요한 수단을 통해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토지는 경작하는 자에게라는 구호대로 "경자유전"을 실현한다. 동시에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몰수하지 않으며 민생을 조종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을 금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의 경제가 아직 매우 낙후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여러 혁명계급들이 연합독재를 실시하는 "신민주주의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는 비록 과도기적인 국가형식이지만, 쉽게 다른 것으로 이행하지 않는 필요한 국가형식이라고 설명했다.
평가
1954년 9월 중국공산당이 정식으로 헌법을 채택하였을 때에는 민족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를 포섭대상에서 제외하여 투쟁대상으로 전환시킨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제기함으로써, 신민주주의 단계는 끝났음을 선포하였다. 결국 신민주주의가 중국공산당의 힘이 부족하자 중립적인 인사들을 포섭하여 중국국민당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냐는 평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중공은 공식적으로 신민주주의론의 폐기와 사회주의 개조의 개시를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정당하고 필연적인 과정으로 서술해 왔다. 개혁개방 이전의 역사문제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1981년 6월 채택한 중공중앙의 "건국 이래 당의 문제에 대한 결의"는 이시기(1953-1956)"당이 확정한 지도방침과 기본정책은 정확한 것이었고, 휘황찬란한 승리를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있다면 신민주주의론을 폐기하고 사회주의 개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빠르게, 즉 당초 제시한 10-15년이 아니라 3년 만에 사회주의의 개조를 완성한 것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신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이 다시 시작된 이후에도 마오쩌둥전의 집필자인 진총지는 신민주주의론의 폐기가 갑작스러운 단절이 아니며 신중국 건립 이후 사회주의 공유제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객관적 추세를 반영한 필연적 결과이며 그 전환도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참고자료
바르바라 바르누앙, 《저우언라이 평전》, 유상철 역, 베리타스북스, 2005
신동준,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인간사랑, 2011
리핑, 《저우언라이》, 김세영 역, 천케이, 2008
헨리 키신저, 《중국 이야기》, 권기대 역, 민음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