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갱
개요
병마용은 ‘진시황의 병마용’을 이른다. 또한 간단히 ‘진 병마용’ 혹은 ‘진 용’이라고도 부른다. 섬서성 서안시 린통구 진시황릉에서 1.5km 떨어진 병마용갱 안에 위치해 있다. 병마용은 고분 조각의 한 형태이다. 고대에는 실제로 순장을 하였는데, 노예는 노예 주인의 부속품으로 주인이 죽으면 노예는 순장품이 되어 순장이 되었다. 병마용은 즉, 병마 형상을 가진 부속품이다. 1961년 3월 4일, 국무원은 진시황릉이 국가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보호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1974년 3월, 병마용갱이 발견되었고, 1987년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됨과 동시에 세계 제 8대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다. 후에 200여 개국의 국가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중국 고대의 찬란한 문명을 상징하는 상징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귀한 보물 중에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중국 이름 병마용(兵马俑) 출토 지역 섬서성 서안시 임동(린통)구陕西省西安市临潼区 제작 시기 진나라秦 시기 다른 이름 진시황 병마용(秦始皇兵马俑),진병마용(秦兵马俑),진용(秦俑) 영문 이름 Terracotta Warriors 출토 년도 1974년 3월 가치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遗产 개방시간 09:00 - 17:00 권장 관람 시간 3시간. 입장료 성수기 : 160위안, 비수기 : 130원. 학생증을 지참하면 반값.
역사적인 배경
인간의 순장은 원시 공동체가 붕괴되고 노예제도가 성립되면서 생긴 하나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상장 제도이다. 인간의 순장이 가장 성행했던 시대는 상나라 시기인데, 상나라 시기의 귀족들의 무덥에는 많은 순장당한 사람들이 있다. 장안 은허 공릉구 안에는 이미 십여개의 순장묘들이 발굴되었다. 순장당한 사람은 5천명에 달한다.
주 왕조는 은 왕조의 폭정을 교훈삼아 “밝은 덕으로 백성들을 보살핀다”를 강조했다. 주례의 탄생과 보급은 순장을 억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근절되었다. 춘추시기가 되었고, 열국들이 패자가 되기위해 경쟁을 하며 시대는 요동치며 순장은 다시 살아났다. 전국 시기, 제후들은 각국에서 앞다투어 순장제도를 폐지했다. 진나라의 헌공원년에는 (기원전 384년) 순장을 금지하였다고 나와있다. 진나라는 정식적으로 순장제도를 폐지했다.
춘추전국 시대 즈음의 사회는 장례 풍습이 바뀌도록 개혁을 시도했고, ‘용’을 순장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토용(진흙으로 만든거)과 큰용 등이 사람을 대신하여 순장되었다.‘용’의 본래 의미는 인간의 순장을 의미한다. 인간의 순장이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 ‘용’은 묘장의 도기, 석조, 인간의 형태를 띈 고유명사가 되었다. 진나라의 병마용은 이 ‘용’을 인간을 대신하여 순장을 한 전형적인 형태이자 용을 이용한 순장의 극치가 되었다. 진나라의 용이 규모나 사실 묘사의 정도에서 이렇게 높은 수준을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은 장인들의 지혜 이외에도, 역사상 첫 번째인 봉건 황제의 의지와 따로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