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기 상하이 여성의 일상과 일탈
장아이링의 「봉쇄」(1943)를 통해 본 중일전쟁기 상하이 여성의 일상과 일탈
신정화 한미연
장아이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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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0.09.30 |
사망 |
1995.09.08 |
장아이링은 무엇보다도 상하이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대부분 작품에 상하이 시내를 묘사하는 장면을 많이 등장시킨다. 또한 장아이링의 작품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정신적 긴장을 자주 다루고 있다.
장아이링의 작품은 1940년대의 상하이와 일본이 점령한 홍콩에서의 삶을 묘사하면서 그 삶의 일상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봉쇄' 또한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일본이 불시에 차를 정차시켜 정치범과 반대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봉쇄시간 동안의 전차 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봉쇄‘된 시간은 도리어 비일상적인 순간이 되어 사람들의 일탈과 환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는 여러 방면에서 해석 가능하지만, 여기에서는 주인공 추이위안이 중일 전쟁 당시 신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일상과 비일상을 주로 살펴보려고 한다.
주인공 추이위안은 집에서 좋은 딸이고 학교에서는 좋은 학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무 살이 조금 넘은 그녀는 대학에서 조교로 강의까지 하는 등 여자 직업의 신기록을 깨뜨렸다. 처음에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격려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 많은 사위를 골랐으면 하고 생각하며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추이위안이 영어를 가르친다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추이위안 자신은 학교와 집에서의 일상 속에서 모욕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어린 아이의 순수함처럼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진짜 사람”이었다.
‘봉쇄’된 전차 안에서 추이위안은 양복 차림에 신문지에 싸인 만두를 들고 있는 뤼쭝전을 만난다. 추이위안은 그의 편한 차림을 보고 겉모습만 번듯한 “好人”이 아닌, 진정성을 지닌 “眞人”이라고 생각한다. 뤼쭝전은 귀찮은 친척을 발견하고 그를 피하기 위해 추이위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짧은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추이위안은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심지어는 그의 말도 안 되는 첩 제안까지 받아들인다.
그러나 ‘봉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뤼쭝전은 전차 안에서 추이위안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과 감정들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일상생활과 가정으로 돌아가 버린다. 심지어 집에 돌아가고 나서는 추이위안의 얼굴조차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는 그만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한편 추이위안은 ‘봉쇄’된 전차 안에서 일상 속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호인”이 가득한 생활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자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비록 봉쇄라는 짧은 비일상적인 순간동안 그녀가 추구했던 “진인” 뤼쭝전과의 관계는 실패로 끝나지만, ‘봉쇄’는 외부세계의 숨 막히는 질서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20-30년대 중국에서는 신여성이라는 객체가 남성들의 독점적인 담론 하에서 가정이나 국가의 하위범주로 고정되었다. 그래서 전근대 사회에 살고 있던 여성들은 근대가 되면 가부장적인 여성의 억압은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근대의 지식인 여성들은 합리성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이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의 지식인 여성들은 과거의 전통과 인습을 거부하고 미래의 가치에 헌신했고, 자신들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기 바라게 된다. 과거 전통적 가치관에서의 여성상이 가정에 충실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편이라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신여성들은 가정보다는 자신의 자아와 행복을 찾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봉쇄의 주인공인 추이위안은 “진인”이라고 여겼던 뤼쭝전과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었고, 말도 안 되는 첩 제안까지 받아들인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중일전쟁이 주는 압박감과 당시 신여성들이 느끼던 억압적인 남성적 지배 담론과 같은 숨 막히는 외부질서가 무의식적으로 겹쳐지고, 일제의 통제로 인한 ‘봉쇄’는 추이위안으로 하여금 그 일상적 압박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종이 울림으로써 ‘딩 링 링 링 링 링’ 각각의 ‘링’자가 차가운 점이 되어 한 점씩 한 점씩 선으로 이어져 시간과 공간을 끊어버렸다.
” — 장아이링, <봉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