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비
개요
악비(岳飛)는 1103년, 하남성 상주(지금의 하남성 탕음현)에서 가난한 농민 악화(岳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기운을 가졌으며,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송나라의 빼놓을 수 없는 장군이 되었다. 유광서(劉光世)·한세충(韓世忠)·장준(張俊)등과 함께 남송의 대군벌을 이루었다. 39세의 나이에 재상 진회(秦檜)의 참소로 목숨을 잃기까지 오로지 '중원 복귀, 송조 부흥'이라는 목표만을 가지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악비(岳飛)의 생애
백조 한 마리가 울며 날아가다
악비가 태어난 하남성은 흔히 중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4천여 년간의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누적된 지역이다. 그동안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패권을 다투었으며, 20여 개의 왕조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하남성 상주(탕음현)은 가뭄과 홍수에 자주 시달렸는데, 이렇듯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악비(岳飛)가 높은 기개와 기상을 갖춘 무인으로 자라난 것은 우연히 아닐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머니 요씨(姚氏)가 악비를 잉태하여 분만하려 했을 때 그의 집 지붕 위로 큰 백조 한마리가 울며 날아갔다고 한다. 이를 보고 아들이 장래에 높고 멀리 날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飛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그래서 그의 자도 飛와 비슷한 뜻인 붕거(鵬擧)이다.
악비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매우 셌으며, 용맹하여 11세에 무술스승 진광(陳廣)으로부터 창술과 검술을 배우고 주동(周同)이라는 활의 명수로부터 궁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양손모두로 활을 쏴 백발백중을 맞추는 명궁수가 되었다. 그가 다른 무인들보다 빼어나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용이 특출났을 뿐 아니라 학문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 읽기 또한 좋아하여 <손자>, <오자>등의 병법을 두루 섭렵했으며, 말이 적고 침착한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져있다. 이외에도 역사를 공부하여 역대 와조의 흥망성쇠를 탐구했고, 망해가는 조국을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30세의 나이에 절도사에 임명되다
악비는 북송이 멸망할 무렵인 1122년, 19세에 의용군에 지원하여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드러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127년에 동경유수 종택(宗澤)이 휘하에 있던 악비의 자질과 역량을 키워주고자 악비를 불러 그에게 "재능과 용맹은 천하에 다시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야전을 할 때에 있어 전략 전술을 배워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악비는 "정세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 전술의 운용은 정세에 맞추어서 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악비는 이미 비범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갖추도 있었던 것이다.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