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노자(老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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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시기 | 춘추시대 말기(기원전 5~6세기) |
주요 작품 | 노자(도덕경) |
관련 활동 | 도가사상 |
개요
노자(老子)는『사기』의 '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의 춘추시대 말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성은 이(李)씨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字)는 담(聃)이다.
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을 창시하였으며, 훗날 도교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했다. 그는 우주 만물에 대해 깊게 연구했고, 이를 통해 만물의 '도'를 발견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가 있으며 후대의 여러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생애
노자는 춘추시대 말기 사람으로 초나라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그의 고향 고현(지금의 허난성)이 진나라 영토였지만, 기원전 479년 초나라 혜왕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초나라의 영토로 복속되었다. 그는 사관이었는데 천문, 점성 등을 점담하는 학자였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젊은 공자와의 만남이야기가 있다. 이 만남은 늙은 노자가 젊은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공자가 이에 감동받아 노자를 높였다는 는 내용인데, 문헌들간의 일관성이 부족해 단순히 전설로 평가받기도 한다. 노자는 춘추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 전역의 혼란을 몸소 겪었다. 춘추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제자백가가 등장하면서 서양의 르네상스시기처럼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노자는 '무위자연' 등을 기치로 하는 도교를 창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경을 저술했다. 그가 도덕경을 저술한 이야기 또한 전설이라는 등 논란이 있다. 사마천에 의하면 노자가 주나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나는데, 도중에 진(秦)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에서 관문지기 윤희에게 책을 써주었다고 한다. 5000언으로 이루어진 이 상편, 하편의 저서는 바로 노자가 도와 덕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도덕경을 쓴 뒤 서쪽으로 떠난 노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사마천은 서술하고 있다.
노자에 대한 의혹
앞서 노자의 생애에 대해 서술했지만 사실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