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박물관
육조박물관 六朝博物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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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자연화존(青瓷莲花尊)” | |
분류 | 역사박물관 |
면적 | 지하면적 약 1.1만㎡, 지상면적 약 1.2만㎡ |
소재지 | 남경 |
개방시간 | 09:00~16:30 |
관람시간 | 약 1-2시간 |
입장료 | 30위안 |
개요
2014년 8월 11일 육조박물관은 공식개방이 되었다. 3세기초부터 6세기말까지 동오(東吳)•동진(東晋)•송(宋)•제(薺)•양(梁)•진(陳)를 합쳐 ‘육조(六朝)’라 하고, 모두 시대에서 지금의 난징을 수도로 두었다. 그러므로 난징을 “육조고도(六朝古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박물관에는 육조시대의 성벽을 비롯한 당시의 많은 발굴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발굴배경[1]
유적은 2008년 난징총통부의 동쪽, 경매에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된 산업용 땅에서 발굴되었다. 당시 여기서 예비개발단계의 고고학조사가 실행되고 있었으나 지하 2미터 지점에 유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 유적을 검증한 결과 1700년 전의 육조건강궁성(台城)이라고 밝혔다. 이후 박물관건설예정지로 지정되고 미국 I.M페이사무서가 설계를 맡았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조성하게 되었다.
구성[2]
건물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있고, 박물관 안에는 <육조수도>, <천고풍류>, <육조풍모>, <육조인건> 4개 전람관으로 배치되어있다. 각각 층의 주된 전시물에 대해서는 이하와 같다.
- 지하 1층
전시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도시’고 하나는 ‘생활’이다. 도시에서는 육조건강성의 건축규모, 궁전, 배수시스템 등을 알 수 있으며, 생활은 육조시대의 많은 문물이나 당시의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길이 25미터 너비10미터의 성벽은 이 박물관의 뿌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Sunshine hall’의 투명한 지붕, 벽을 통해 테양의 빛이 홀 내에 들어오기 때문에 아주 멋진 성벽을 볼 수 있다.
- 1층
1 층에는 아름다운 유리천막이나 ‘만천별(满天星)’이라고 불리는 바닥의 미색 석회, 석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78 개의 유리창 그리고 육조시대의 역대 지역도, 역대 황제의 년호 및 즉위시기에 대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10미터의 스크린에는 15분정도의 짧은 영화<동방의 대도시>가 반복 상영되고 있다. 이것으로 인해 모두를 육조의 꿈으로 데려다준다. 그 이외에 1층에는 ‘천고풍류- 삼국인물에 대한 이야기나 문물특집’이 전시되어 있다. 이 문물들은 다른 박물관 6 군대에서 총 60개에 달은 삼국인물에 관한 문물을 합친 것이다. 종류는 서예와 그림, 도자기, 진흙으로 만든 인형, 목조품 등 다양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수백년의 삼국에 대한 이야기가 민간생활 속에서 유행해온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2층
2 층에는 <육조풍모>가 전시되고 있다. 육조시기의 토용, 도자기, 묘지, 와당, 석각 등 아주 귀한 군물들이 있으며 미학의 시각으로 육조시대의 예술들을 읽어낼 수 있다. 또, 육조박물관의 보물 “유하채우인문반구호 (釉下彩羽人纹盘口壶)”와 “청자연화존 (青瓷莲花尊)”가 있다. “釉下彩羽人纹盘口壶”는 东吴(동오)시기의 작품으로 羽人(전설에 나오는 날개 있는 신선), 선초(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풀), 비익조, 불상등 신기한 예술들을 다양하게 나타내고 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오부터 서진시기의 도자기의 그림예술은 단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청자연화존(青瓷莲花尊)”는 1972년 난징 치린(麒麟)문 밖 링산(靈山) 남조(南朝)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같은 종류의 자기류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졌다. 연꽃(莲花)을 중심으로 그려진 웅장하고 단정한 외관으로 길이가 85센티미터에 달해 ‘청자(靑瓷)의 왕’이라 불리곤 한다. 불교예술에서는 연꽃은 정토의 뜻을 가지고 “自性清净(자성의 청정)”를 상징한다. 이 작품는 이러한 불교색이 담겨져 있는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육조박물관에 갔다온 감상
우선 이 박물관의 외관이 작년(2014년)에 개방되었기 때문에 첫 인상으로서 새롭다는 것을 느꼈다. 들어가면 아주 넓은 로비 왼쪽에서 영화 <동방의 대도시>를 상영하고 있었다. 큰 스크린 옆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육조시대의 대도시의 모습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입구에 들어가서 바로 “생활”에 관한 물건들이 눈에 뛰어온다. 당시의 금반지도 있었는데 현대의 우리와 똑같이 당시의 사람들은 반지로 되어 있는 금을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당시의 배수로도 있었다. 성벽은 그 곳에서 발굴되었다고 하지만 배수로는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는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육조 당시의 겅간궁성의 성벽이 나타났다.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1천년 이상 전에 사용되던 성벽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성벽을 위에서도 볼 수 있어 여러 측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인상이 깊었던 것은 2층의 문물들이다. 육조시대에서는 가장 높은 기술을 구사하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무늬와 그림을 가진 도자기들은 당시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추구와 숙련된 기술의 높음을 깨닫게 한다. 이외에도 육조시대의 글자가 새겨진 유물들도 당시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박물관 안의 설계는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자연을 많이 이미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구사한 구성으로 되어 있어 전시물을 감상하는 동시에 감탄하게 되었던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