婦
語源
고대사회에서는, 남·녀의 분업이 명확했다. 남자는 주로 바깥일을, 여자는 주로 집안일을 했다. 남자는 밖에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지었고 사냥을 했으며, 여자는 집에서 베를 짜고 청소하고 밥을 지었다. 갑골문과 금문의 부(婦)자는 한 여자가 빗자루를 쥐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빗자루를 쥐고 집에서 청소를 하는 등의 집안일을 하는 것은 혼인한 여자의 일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부(婦)자의 본래 의미는 주로 ‘혼인한 여자’ 또는 ‘아내’를 지칭한다.
文化
<부인 부(婦)의 재해석 : 빗자루를 든 귀부인>
'부인 부(婦)’는 ‘계집 녀(女)’와 ‘빗자루 추(帚)’로 구성된 글자이고, 이는 여자가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아이 양육을 담당했기에, 아무래도 집안 청소 등의 가사는 전통적인 여자의 몫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빗자루를 든 모습은 청소가 주부의 일상이라는 뜻에서 (결혼한 여자)를 지칭하게 되었다. 물론 요즘 신세대 부부들의 모습과는 다분히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상나라 때는 부(婦)가 여성에 대한 일반적 통칭이 아닌 ‘왕비’ 등을 가리키는 직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1976년, 상나라의 수도였던 하남성 안양 은허에 있는 상나라 제23대 무정 임금의 부인 부호(婦好)의 무덤에서 무려 2천여 점에 가까운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1]
부장품에는 청동기 외에 석기와 옥기, 뼈와 상아로 된 제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고도의 기술을 구사해서 만들어진 제1급의 예술성을 갖춘 것이었다. 이 부장품의 질과 양으로, 당시의 왕비가 가지고 있던 강대한 권위를 볼 수 있다.[2]
또한 부호는 군대를 거느리고 적국으로 전쟁하러 나가기도 하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주재하기도 해서 국가의 중대한 일에 밀접하게 관계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문자 학자들은 여인과 빗자루로 구성된 부(婦)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집안 청소가 아닌, 제사를 모시는 제단을 청소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제단에는 여자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신성하기 그지없는 금녀의 영역에, 비록 ‘청소’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출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직위가 꽤나 높았을 것이다. 이런 특전을 가진 직위가 바로 부(婦)요, 결혼한 여자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다.
모계제가 번성한 신석기 중기에, 성년이 된 부녀자들은 채집활동에 종사했다. 帚는 본래 부녀자들이 야외에서 식물과식을 채집한 후 가져오는 완전한 나무로, '채집노동’을 상징했다. 더 나아가, 성년 부녀자를 대표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돌도끼를 나타내는 父가 성인 남성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갑골문에서는 帚가 婦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부녀자가 가지고 온 완전한 나무는 거기에 달린 과실들을 채집한 후에 쓰레기를 청소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3]
<부인에게 필요한 사행(四行)>
옛날에는 부인에게 사행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례>의 규정에 이 사행이 나와 있는데, 이 사행이란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公)을 말한다.[4]
부덕- 부인의 덕행. 부인에게는 덕이 있어야 한다.
부언- 부인의 언행. 부인의 말씨가 고와야 한다.
부용- 부인의 매무새. 미인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교양 있는 차림새를 중요시 여겼다.
부공- 부인의 재주. 주로 길쌈, 바느질, 음식 솜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