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릉
중산릉 中山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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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약 8만m² |
소재지 | 남경江苏省南京市玄武区陵前路 |
개방시간 | 08:30~17:00 |
관람시간 | 약 2-3시간 |
입장료 | 2011년 이후로 무료 |
-상위 문서:2015년 답사
남경에 위치한 중국 국민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의 묘이다.
중산릉
쑨원의 생애
- 쑨원(1866~1925)은 중국대륙의 공산당이나 대만의 국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에게 국부로 받들어지는 사람이다. 민족, 민권, 민생을 중시하는 삼민주의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유명한만큼 일찍부터 혁명의 길을 걸었을 거라 많이 생각하지만, 쑨원은 빈농가에서 자랐으며 서양의사였다. 하지만 사람의 병보다 나라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혁명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흥중회, 중국동맹회의 결성을 주도하고 혁명을 이끈 것이다. 마침내는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까지 맡지만 그 뒤에도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리고 1925년에 지병이었던 간장병이 간장암으로 커져 북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중산릉 소개
- 이 쑨원의 묘인 중산릉은 쑨원의 호 ‘중산’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중국인 튜터 선생님은 쑨원이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다며 중국에서는 쑨원보다는 쑨쭝샨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릉’이라는 명칭도 원래 황제의 묘에만 붙이는데 쑨원의 묘에도 ‘릉’을 붙이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의 존경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산릉은 쑨원의 동서, 즉 아내 쑹칭링의 동생 쑹메이링의 남편인 장제스가 1926년부터 3년간 건축했다. 올라가기까지 계단이 무려 392개가 있고 5m 높이의 돌 입상이 무덤을 지키고 있어 규모가 매우 크다. 패방과 비각, 제당 등에는 '박애', '천하위공', '민족, 민권, 민생', '천지정기', '건국대강', '총리유촉' 등의 글귀가 보이고 제당 안에는 손문의 좌상이 있다. 제당 뒤의 묘실에는 관이 있습니다.
다녀온 감상
- 중산릉에 대해 조사를 하다 참고한 여행 블로그마다 남경까지 가서 중산릉에 가지 않으면 중국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정도로 중국인들은 쑨원을 매우 존경하고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었는데 실제로 가 보니 그 존경심이 크게 와닿았다. 비가 굉장히 많이 오는데도 방문객이 굉장히 많았고 그들은 총 392개의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힘든 내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또, 이 중산릉을 지은 건축가가 실수로 기둥을 잘못만들었는데 원래는 쑨원같은 중요한 인물의 묘를 만드는 것에 실수를 하는 것은 당시에 사형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쑨원의 아들이 이곳에 아버지의 정신인 '박애'를 써 놓으면서 이런 실수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그 정신에 어긋난다며 용서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일화가 굉장히 와닿았다. 오기 전까지는 단지 좋은 인물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직접 가보고 느끼며 쑨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