漁
語源
갑골문에서는 물고기 무리들이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며, 금문에는 한 쌍의 물고기를 잡는 손이 추가되었다. 이 손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 인류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주로 세 가지가 있다. 1. 물속에 손을 집어넣어 잡는다. 2. 그물을 펼쳐서 잡는다. 3. 낚싯대를 드리우고 잡는다. 이 세 방법 모두 갑골문과 금문의 漁에 모두 그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漁는 물고기를 잡는 여러가지 방법을 형상화한 글자이며 후에 '약탈하다', '빼앗다' 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과거에는 魚라는 한자로 물고기, 물고기를 잡는 행위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인 어부까지 모두 표현하였으나 이후 물고기를 잡는 행위는 漁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文化
수렵에 비해서 물고기를 잡는 것은 흥분을 주거나 자극성 있는 활동은 아니었고, 또한 군사훈련과도 무관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갑골복사에서 물고기와 관련된 표현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2]
생선은 인류가 식용한 동물 중에서 시기가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지구가 홍수 시대를 겪으면서 인간은 산 정상과 나무 위에서 거주하게 되었으며, 주변 환경에서 주로 얻을 수 있는 먹잇감은 생선이었다.[3] 따라서, 고대중국인들에게 물고기는 식량으로써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그런 만큼 물고기를 잡는 일은 고대인들에게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반파의 유적에서 발견된 낚시 바늘, 고기잡이 작살, 그물추 등의 유물과, 갑골문의 漁자를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 중국인들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여러 종류의 물고기 잡이 그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둑에서 일정한 거리의 물속에까지 이르는 긴 형태의 그물은, 조금씩 당기면 자꾸 좁아지면서 활 모양으로 변한다. 몇몇 갑골문에서 발견된 것은, 우리가 보통 볼 수 있는 어망보다 둘러치게 돼 있는 그물과 더 닮았다. 강물 속에 설치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물도 있다. 이러한 그물들은 오늘날에도 작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데 쓰이는 그물과 거의 비슷하다.[5]
『춘추』에서는 노(魯) 은공(隱公)이 기원전 718년에 당(棠)에서 표창으로 물고기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대에 표창으로 물고기를 잡아서 제사에 바치던 풍속의 유산으로 보인다. 7천년 전의 무안 자산 유적지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때 쓰던 뼈로 된 어표(魚鏢)가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표창으로 쏘거나 나무막대기로 때여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너무 원시적인 것이었으므로, 상나라 때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갑골문의 자형에는 표현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망을 쳐서 잡는 것은 가장 진보된 고대의 어렵법인데, 자산의 유적지에서 어망의 북인 어사(魚梭)가 발견되었다. 이는 늦어도 7천년 전의 사람들이 이미 어망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았음을 말해준다.
물고기를 잡는 일이 큰 비중을 가진 일인 만큼, 처음에는 그 개념도 다양한 글자의 모양만큼 세분화 되어 있었을 것이다. 즉 ‘물고기를 손으로 잡다’, ‘물고기를 낚싯대로 잡다’, ‘물고기를 그물로 잡다’ 이 세 가지 개념을 각각 가리키는 갑골문이 생겨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물고기를 잡는다'라고 하는 공통분모로 의미가 집약 되었고 현재의 漁자로 자형이 통일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