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사
타이베이시 완화구 광주가 211에 위치(MRT 板南線 龙山寺站)한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대만 시가지에 위치하여 많은 대만사람들이 방문한다. 대만의 자금성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외양이 특징이다. 또한 사원 내 동으로 만든 용 조각 기둥은 대만에서 유일한 동 제품의 용 기둥으로 2급 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삼천전 좌우에서 사원을 호위하는 듯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역사
1683년 청의 토벌군에 의해 복건성(福建省)으로 편입된 대만은 많은 복건성 사람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베이는 당시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이라 6명 중 3명이 살고 1명만 돌아오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신의 구원을 구하고자 1738년에 복건성 이주민을 중심으로 복건성의 관음보살상의 분령을 모셔와 타이베이에 용산사를 지어 모셨다. 한편 1884년 청불전쟁 때 프랑스 군대 격침에 큰 역할을 하였다. 용산사를 중심으로 그 일대 주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청불전쟁에 도움을 주었다. 광서황제는 용산사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慈暉遠蔭」(사랑의 빛이 아주 멀리까지 은택을 베풀다)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간 수많은 지진으로 크고 작은 소실이 있었지만 복구 사업으로 1957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설화
태평양전쟁 당시 용산사는 대만인들의 전쟁대피소 역할을 하였다. 대만인들이 용산사에 모여 생활하고 있을 때 모기가 대량 출몰하여 사원 내 사람들을 괴롭혔다. 결국 피난민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의 폭격기가 용산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용산사의 관음보살상만이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 후 대만인들은 관음보살의 힘으로 공격을 피해갈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의식
용산사 건립 이후 약 300년 동안 꾸준히 매달 음력 1일과 보름에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 거행된다. 또한 매년 구정, 석가탄신일, 중추절 등 민속축제에 있어 타이베이 종교활동의 중심지가 된다. 방문객들을 위해 사원 입구에 향을 하나씩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종교관
대만은 중국과 달리 폭넓은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나라이다. 사원을 관공서에 등록하면 면세 혜택을 물론 교육 사업과 같은 비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도 허용한다. 따라서 용산사에는 불교, 도교, 민속 신앙이 함께 어우러져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한국의 종교 생활과 달리 격식이 엄격하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예배를 지내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상에는 특별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물 한 병과 같이 자신의 선에서 성의를 보일 수 있는 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