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녀산성
-상위 문서:2018년 답사
고구려의 첫 수도, 졸본성
고구려의 첫 도읍지는 졸본성(卒本城)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건국설화를 전하고 있는『삼국사기』동명성왕편에는 “주몽이 졸본천에 이르렀는데,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왕 3년(기원전 35) 7월에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의 역사책 『위서』에도 전하는데, 여기에서는 주몽이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하였다고 한다. 이 건국 설화 속 비류수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 졸본은 환인시 일대, 흘승골성은 환인의 오녀산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환인 일대는 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분지로서 그 자연 환경이 위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기록인 「광개토왕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남하하여 비류곡의 홀본 서쪽에 있는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이 기록에서 서쪽 산위의 성이 오녀산성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홀본(졸본)은 오녀산성의 동쪽이 되는데, 환인은 오녀산성의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방향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졸본 지역을 혼강과 부이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보는 견해도 최근에 등장하고 있다.
홀승골성이라는 이름은 순수 고구려어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중국은 홀승골성이 있던 자리에 오녀산이라는 명칭을 새로이 붙였는데 이는 다섯 명의 선녀가 흑룡과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당나라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오녀 전설과 관련된 명칭을 붙이고, 고구려 역사와 관련 없는 조형물을 만들어 고구려의 역사상이 부각되지 않도록 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오녀산성의 위치와 구조
오녀산의 서남쪽에는 넓은 환인분지가 있고, 동남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졸본천)이 흐른다. 오녀산성은 중국 요녕성 환인시 동북쪽 8.5km 거리에 있는 해발 820미터 산정상에 위치한다. 성벽의 둘레는 약 1,110m 정도이고, 남·서·북벽은 높이 100m가 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며, 경사가 완만한 남동쪽 일부와 동쪽에만 인공 성벽을 쌓았다. 오녀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3개의 성문이 있다. 그중 동문은 어긋문 형태의 성문으로서 후기의 성문처럼 옹성형태를 취하지는 않고 있으나 ㄱ자 형태로 회절한 동벽이 1자형의 남쪽성벽과 90도 정도의 각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문구부양쪽 성벽이 치성의 역할을 하도록 하여 방어력을 높이고 있다. 서문은 오녀산 정상부의 서쪽에 있는데 서쪽에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남문은 남벽의 동쪽 끝에 있는데 산성의 동남모서리에 해당한다. 남벽의 동쪽은 절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쪽부분만 높이 4.3m 정도의 지상성벽이 구축되어 있다. 산 정상에는 남북 1,000m, 동서 300m 정도의 넓은 평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천지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으며, 성의 남쪽 끝에는 전투지휘소인 장대가 있는데 여기서 멀리 혼강과 환인 시내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그리고 성내에는 왕궁터, 병사들의 숙소 등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온돌시설, 연자방아, 저수지와 우물, 점장대 등이 있다. 또 오녀산성의 주변에 있는 고력묘자(高力墓子)에는 고구려 초기 돌무지무덤 떼들이 자리잡고 있어 이곳이 고구려 초기 도읍지임을 증명하고 있다.
고구려 산성은 봉우리와 능선에 쌓아 분지 지형을 띠는 포곡형(包谷形),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는 산정형(山頂形), 두 유형의 중간 형태인 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오녀산성은 대표적인 산정형 산성에 해당한다. 산정형 산성은 산정 위에 성벽을 쌓은 유형으로 산성 안의 지세는 높고 비교적 평탄한 편인데, 대부분 사방이 험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많고 강으로 둘러쌓여 있다고 한다.
오녀산성은 높은 산 위에 위치해 정치, 경제적 발전과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불편한 점이 많고, 산 위의 면적이 한정되어 있어서 많은 인구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오녀산성은 전쟁 등 비상시에 사용하던 방어용 산성이고 평지성이 따로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오녀산성에서 혼강을 따라 10km 정도 내려가면 강 가 평지에 존재하던 하고성자토성(下古城子土城)이 바로 그것이다. 즉 산성인 오녀산성과 평지성인 하고 성자성이 하나의 조합을 이루는 고구려의 도성구조가 이미 건국 초기에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이후 국내성과 평양성에도 이어진다. 하고성자토성의 규모는 동 226m, 서 264m, 남 212m, 북 237m로 강의 퇴적 작용과 주민들의 생활 공간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고 일부 고구려시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다녀온 감상
이번 답사는 매우 값진 경험이 되었다. 고구려의 주무대는 한반도 북쪽이었기에 북쪽을 갈 수 없는 우리는 일상에서 고구려 문화나 유적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고구려 유적' 하면 떠오르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환인, 집안 답사를 통해 처음으로 고구려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에서 천지를 제외하고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오녀산성이었다. 자료 조사를 맡아서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유적지보다 더 관심이 갔고 산성 위에서 보는 전경 또한 매우 아름답다고 들어 꼭 눈으로 담고 싶었다. 환인에 도착해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안개 낀 오녀산의 모습을 보았는데 멀리서 보았음에도 매우 웅장했다. 꼭 한번 저위에서 환인지역을 내려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대감을 안고 갔는데 결국 오녀산성에 오르지 못했다.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심하게 쳤던 탓이었다. 산 밑에서 박물관만 관람한 채 발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박물관에는 오녀산 및 환인 지역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실 크게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들었던 청동기 유물, 토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고구려 특유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중국에서 가본 여러 곳의 박물관 중에서도 성의 없게 전시해둔 곳으로 느껴졌다.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도읍, 발원지였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그 역사성을 잘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오녀산성) 오녀산성의 절벽부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 오녀산성 안의 우물 천지와 주거흔적
출처
탁양현,『한민족의 역사 속 보수와 진보 제 3권』, e퍼플, 2018 한국콘텐츠진흥원, 『오녀산성』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산성연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