鼓
語源
‘고(鼓)’는 원기둥 형태로 가운데는 비어있으며, 양 끝은 겉가죽으로 덮인 타악기이다. 고대의 양군이 전투하면, 북을 치고 징을 울림으로써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지휘하는 것을 가리킨다. 고문자의 ‘고’자는 사람이 손에 북채를 쥐고 북면을 두드리는 것의 형상을 상형한 것으로, 그 원래 뜻은 ‘북을 치다(击鼓)’이다. 뜻이 파생되어 ‘두드리다(敲打)’, ‘톡톡 치다(拍打)’, ‘연주하다(弹奏)’를 가리키며, ‘손뼉을 치다(鼓掌)’, ‘비파를 치다(鼓瑟)’와 같다. 더 확대되어 ‘진동하다(振动)’, ‘정신을 차리다(振作)’, ‘격려하다(激励)’등의 뜻이 있고, 예를 들어 ‘선동하다(鼓动)’, ‘격려하다(鼓励)’, ‘고무하다(鼓舞)’, ‘열의를 북돋우다(鼓足干劲)’가 있다. 이 외에 북의 형태는 밖으로 볼록해서, ‘고’자는 또한 ‘튀어나오다(隆起)’, ‘돌출하다(凸出)’의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볼록한 배(鼓腹)’가 있다.
文化
商代의 鼓는 제사에서 주로 연주했던 악기로, 그만큼 갑골복사에 鼓를 연주하여 선왕을 기리는 등의 제사를 지낸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당대에 높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던 악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
鼓에는 종류가 상당히 많았다. 《설문해자》에는 <주례(周禮)>에 六鼓가 나온다. 육고로는, 천신에게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뇌고(雷鼓)’, 지신에게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영고(靈鼓)’, 종묘에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노고(路鼓)’, 군대에서 사용하는 ‘분고(鼖鼓)’, 노역의 집합과 해산에 사용하는 ‘고고(臯鼓)’, 종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진고(晉鼓)’가 있다. 특히 고인(鼓人)이라는 관직이 있어, 六鼓를 전담하도록 했다는 것에서 鼓의 종류와 그것을 치는 용도도 달랐음을 알 수 있다.[2] 또한 북을 가리키는 한자가 鼓말고도 ‘鼙’(마상 북 비. pí), ‘鼛’(큰 북 고. gāo) 등이 있다.[3]
북은 이처럼 예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용도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중요한 축제나 명절 날, 그리고 길흉사 때마다 중국인들이 북을 들고 끊임없이 울려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4]
상대의 북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무로 된 북은 묘에 매장하거나 어떠한 형태로 보관한 뒤, 오랜 시간을 경과하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나무로 된 것이 다수였기에 오랜 기간 보존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木鼓를 모방하여 만든 청동 북인 銅鼓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림 6>의 ‘雙鵰饕餮紋銅鼓’이다. 출토 지점은 불분명하며 시대는 商代 후기로 추정된다. 鼓의 몸체는 원통형이며, 아래에는 짐승 머리 모양의 네 개의 발이 있어 세워 놓을 수 있다. 높이 81.5cm, 가로62.0cm, 鼓面의 직경 44.5cm, 무게 71.7kg이다. 鼓의 꼭대기는 서로 반대방향을 향하고 앉아있는 새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원통형의 몸체에는 양면으로 饕餮 문양이 화려하고 복잡하게 새겨져 있다. 鼓面은 악어가죽을 모방한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식으로 동물의 가죽을 모방한 형태의 북 표면이 자주 발견되고는 한다.
‘饕餮紋銅鼓’는 1977년 6월 湖南 崇陽에서 출토되었다. 鼓冠, 鼓身, 鼓座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높이 75.5cm이고 무게 42.5kg이다. 鼓의 윗부분인 鼓冠은 사당(廟宇)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사당의 문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깃털 장식을 꽂아 놓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鼓冠, 鼓身, 鼓座 모두 전체적으로 짐승 얼굴을 형상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이 鼓의 鼓面은 소와 양가죽을 모방한 것이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