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양귀비 (楊貴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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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양옥환 (楊玉環) |
출생 |
719년 |
국적 | 당나라 |
별칭 | 비구니 시절 법명은 태진(太眞) |
직업 | 당 현종의 후궁 |
종교 | 불교 → 도교 |
배우자 |
당 현종 이융기 |
친척 | 양국충(오빠), 양현교(숙부) |
개요
생애
양옥환(楊玉環)은 719년 당 현종 집권 초기에 쓰촨성 촉주(蜀州)(현 두장옌 시)에서 태어나 포주(蒲州)의 영락(永樂)(현 산서성 융지 시)에서 자랐다.
양옥환의 부친 양현염은 양옥환이 어렸을 때 죽어서 양옥환은 하남성 낙양에서 하급관리로서 근무하던 숙부 양현교(楊玄璬) 슬하에서 자랐다. 숙부는 가정교육에 엄격해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많은 시문을 외우게 했다.
이후 제18 황자 이모(李瑁)가 무씨에게 양옥환을 자신의 비로 달라고 청했다. 무씨는 측천무후의 조카라는 이유로 황후에는 봉해지지 못했지만, 현종에게서 가장 큰 총애받는 후궁이었기에 현종은 무씨가 한 부탁을 들어주었다.
733년 양옥환은 이모와 혼인했지만 현종이 양옥환에게 마음이 동해 술수를 써 745년 양옥환을 자신의 후궁으로 맞이한다.
현종은 즉위 초기에 개원의 치를 이룩할 정도로 어질게 정치했지만, 양옥환을 후궁으로 들인 이후 그녀에게 빠져 그녀의 일가의 전횡을 방관한다.
결국 안사의 난이 발발하게 되고 당의 국력은 크게 하락한다.
한편 756년 7월 15일 섬서성 마외(馬嵬)에 이르러, 전란 원인이 된 양국충을 증오하던 진현례(陳玄禮)와 병사들은 양국충과 국부인들을 처형했으며, 현종에게 양옥환을 죽이라고 요구했다. 현종은 그녀를 옹호했지만, 고력사의 진언에 따라 양옥환에게 어쩔 수 없이 자살을 명했다. 고력사에 의해 그녀는 목매달아 죽었다.
기타
-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고 일컬어 진다.
- 그녀의 키는 155cm였는데 몸무게가 65kg에 달했다고 한다. 아주 건강한 체형이다.
-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는 전족의 영향으로 현종의 발 위에서 놀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