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語源
四는 숫자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四자는 네 개의 가는 가로 선을 그어서 “四” 숫자를 표시하였다. 그것은 1,2,3 등의 숫자와 같이 모두 지사자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소전의 四자는 회의자이고, 사람의 입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이다. “呬(숨쉬다)”의 본래 글자였다. 이 때문에 四가 숫자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呬의 본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文化
유럽에서는 일찍이 아라비아 숫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숫자체계를 사용했다. 이런 체계는 15센티미터쯤 되는 가는 대나무 가지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인들은 대나무 가지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배열해 놓고 , 이를 숫자 대신으로 사용했던 것이다.[1] 숫자 四자는 처음에는 네 개의 평행선으로 표시했는데, 기원전 2세기부터는 네모 틀이 사용되었다.[2] 숫자 중 四, 六, 八, 이 세 개의 짝수에는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세 글자의 공통점은 숫자의 자형에 모두 八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八은 ‘나누다’의 의미로 분리되어 서로 등지고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八에는 一이 나뉘어 二가 되고, 二가 나뉘어 四가 되고, 四가 나뉘어 八이 되는 중국 고대인의 숫자에 대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고대 중국인의 관념 속에서 一은 가장 큰 수이며, 다른 수는 一에서 나뉘어져 생성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수학이론에서 一은 가장 작은 자연수이며, 다른 자연수는 一에서 하나씩 더해진 것이라는 개념과 다르다. 이러한 문화적 함의는 표의문자인 한자의 자형구조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3] 또한 육조시대 송나라 시인 포조(鮑照)에게도 숫자 四와 관련된 수수께끼 시가 있었다.
그것에는 二形一體, 四支八頭, 四八一八, 飛泉仰流 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물[井]이다. 四八은 32, 거기에 一八을 더하여 四十(40)이다. 우물[井]의 모습은 十을 네[四]개 포갠 형상을 가리켰다는 것이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