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역사
후한의 건국
유현은 유수 형제의 공을 질시하여 유연을 죽이고 도읍을 낙양으로, 다시 장안으로 옮기고 유수를 하북으로 보냈다. 결국 유수가 그 곳에서 세력을 점차 키워 서기 25년에 호(鄗)에서 제위에 올랐다. 이 때 적미병이 장안으로 들어가 유현을 죽이자 유수는 적미병을 토벌하고 도읍을 낙양으로 옮겼다. 이 나라를 후한이라 부르며, 왕망의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한나라 황실의 후예인 유수가 바로 후한의 광무제이다.
통치체제
국가유교
군현제
사회제도
외교
흉노와의 외교정책
실크로드
광무제는 월지국이 흉노에게 패했다는 정보를 얻게 되자, 그들과 연합하여 흉노를 칠 계획으로 낭관인 장건을 사자로 월지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월지에 파견된 장건과 그의 일행은 즉각 흉노에게 잡혀 10여 년간 억류되었다. 이 동안에 그는 흉노 여성을 아내로 맞아 아이도 낳았다. 그러다 경비가 느슨한 틈을 타 탈출하여 수십 일만에 대월지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하를 속국으로 삼아 번영한 이 나라는 흉노와 싸울 의지가 없었으므로 장건은 1년 남짓한 체류 후에 타림 분지의 남쪽을 거쳐 귀로에 올랐다. 거기서 그는 다시 한번 흉노에게 붙잡혀 1년간 억류되었지만 내분을 이용하여 126년에야 가까스로 창안에 돌아왔다. 장건의 목적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그로 인해 서역의 사정이 중국에 알려졌다. 서역에는 36국이 있었는데 이들 국가들이 연결되는 길을 통하여 중국과 서역의 문물이 교류되었다. 중국의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고, 서역의 특산인 포도와 석류 등은 물론 인도의 불교도 이 길을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 왔다. 바로 이 길은 비단길, 또는 실크로드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