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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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초기

이사는 진나라 사람이 아니라 초나라의 상채(上蔡)사람이다. 이사는 군에서 낮은 지휘에 있었는데, 쥐들을 보았다. 변소의 쥐들은 사람이나 개들이 다가가면 놀라서 도망갔지만, 창고안의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신경 쓰지 않고 맛있게 곡식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은 그 사람의 인품이 아니라 위키나 환경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이사는 순자를 찾아가 그의 밑에서 한비자와 함께 수학했다. 권력을 쫒는 이사의 성향은 하산을 하며 순자에게 말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올내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 [1]"

자신의 고향은 초나라였고, 당시 전국시대에는 전국 칠웅이라는 7개의 나라가 있었으나 이사는 권력을 찾아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진나라로 떠난다. 당시의 진나라는 장양왕이 죽고 13살의 진시황이 즉위한 때였는데, 이사는 승상이었던 여불위를 찾아가 그의 식객이 된다. 여불위의 도움으로 벼슬을 얻고 진시황에게 간언한 기회를 얻게 되자 이사는 천하를 통일할 방법을 얘기하고 이에 진시황은 이사에게 큰 벼슬을 내린다. 이사의 계책에 따라 진나라는 각 국 제후들을 매수하기도 하고 암살하기도 하며 제후국들의 힘을 약화시킨다.

축객령과 간축객서

한나라의 정국이라는 사람이 운하를 만드는 것을 건의하였다. 운하를 만드는 일은 많은 인력과 시간을 소모시키는 일이므로 이를 통해 진나라가 동쪽을 침략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국의 음모는 들통이 나게 되고, 진나라의 왕족들과 진나라 출신의 대신들은 타국 출신의 관료들을 내쫒자는 주장을 하고 진시황은 이를 받아들여 축객령을 내리게 된다. 초나라 출신인 이사는 당연히 이 명단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이에 이사는 진시황에게 “간축객서”라는 글을 써서 올린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진나라의 왕들의 업적을 설명하며 이 모은 왕들의 곁에는 타국 출신의 인재가 있었음을 알린다. 효공의 곁에는 상앙이 있었고 혜왕의 곁에는 장의가 있었으며 소왕의 곁에는 범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국 출신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것이 부당함을 알린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 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태산불사토양 고능성기대)/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

지금까지도 명문으로 칭송받으며 대한항공 광고에도 쓰였던 간축객서로 인해 진시황은 이사의 관직을 복원시키고 축객령을 거둔다.

  1.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사기 열전』, 민음사, 2013년, p.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