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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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년 4월에 성도 무담의 남쪽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건안 26년(221년) 4월 병오일, 황제 유비는 감히 현모(玄牡-희생용 검은 소)를 써서 황천(皇天)의 상제(上帝)와 후토(后土-땅)의 신기(神祇-천신과 지신)에 밝게 고합니다. 한나라가 천하를 차지해 역수(歷數)가 무궁했으나, 일찍이 왕망이 찬역하자 광무황제가 진노하여 이를 주살하고 사직을 다시 보존했습니다. 지금 조조가 무력에 의거하여 안인(安忍-잔인한 짓을 예사로 저지름)하니, 주후(主后)를 육살(戮殺-살륙)하고 도천(滔天-하늘에 차고 넘칠 정도로 죄악이 큼)하게 중국을 망치며 천현(天顯-하늘의 뜻)을 되돌아보지 않았고, 조조의 아들 조비는 흉역한 마음을 품고는 신기(神器)를 훔쳐 차지했습니다. 군신(群臣-뭇 신하), 장사(將士)들이 이르길, 사직이 무너지려 하니 저 유비가 응당 이를 닦아 2조의 대업을 잇고 천벌을 공행(龔行-봉행)해야 한다 했습니다. (중략) 번예(燔瘞-제사물품)를 마련해 천신(天神)께 고류(告類-황제나 황태자 즉위식 등 때에 행하는 제사의식)하니, 신들께서는 흠향하시고 한가(漢家)에 복을 주어 사해를 영원히 평안케 하소서!”

연호를 건원에서 장무(章武)로 고쳤다. 제갈량(諸葛亮)을 승상(丞相), 허정(許靖)을 사도(司徒)로 삼고, 백관(百官)을 두고 종묘(宗廟)를 세워 제사를 지냈다. 5월이 되자 오씨를 황후로, 유선을 황태자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