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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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년, 강유는 유선에게 위가 공격해온다는 글을 올렸으나, 황호가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당의 말만 믿고 유선에게 그대로 고하여 아무도 대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종회와 등애가 군대를 밀고 들어오자 그때가 되어서야 요화 등을 보내 강유를 돕도록 하였다. 종회가 한중을 공격하자 모든 군이 한성과 낙성으로 물러나 방어를 굳혔다. 왕함은 낙성을, 장빈은 한성을 각각 수비했다. 그러나 종회는 관성을 함락시켜 군량을 확보하고 군사를 진격시켰다. 강유는 종회의 군대가 한중으로 들어선 것을 알고 한중으로 물러나는데 양흔이 강천구까지 추격하여 크게 싸웠다. 강유는 패하여 돌아가던 중, 제갈서가 교두를 막고 있는 것을 알고 공함곡을 통해 제갈서의 후방을 치려고 하였다. 제갈서는 이것을 듣고 30리를 후퇴하였다. 강유는 제갈서의 군대가 퇴각하자 교두를 통과하였고, 제갈서가 급히 돌아갔으나 하루 차이로 강유를 놓쳐버렸다. 장익과 동궐이 막 한수에 이르렀을 때 강유와 요화 또한 퇴각하다가 그들과 군을 합쳐 물러나 검각을 지키며 종회를 막았다. 종회는 검각을 뚫기 어렵고 또 군량을 운반하는 길이 매우 멀었으므로 귀환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런데 등애는 음평의 경곡도를 걸쳐 면죽에서 제갈첨과 장준을 격파하였다. 등애가 갑자기 들어닥친 것에 놀란 유선과 신하들은 동맹인 오로 망명하거나, 남중으로 도망갈 것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초주는 “옛날부터 다른 나라에 기탁하고 천자로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 만일 오나라로 들어간다면 당연히 신하가 되어 복종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규율에 차이가 없으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합칠수도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런 이치인 것입니다. 이로부터 말하면, 위나라는 오나라를 병탄할 수 있어도, 오나라는 위나라를 병탄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똑같이 신하가 된다면, 작은 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어떻게 큰 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오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치욕을 받는 것이 어찌 한 차례 치욕을 받는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남쪽으로 도주한다면, 일찍이 계책을 세운 연후에야 실현될 수 있일 것입니다. 지금 강대한 적군은 가까이 접근했고 재화와 멸망이 도래하려고 하니, 소인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남쪽으로 출발할 때에는, 뜻하지 않은 변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어떻게 남쪽으로 가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라며 항복할 것을 건의하였고, 유선은 망설이다가 초주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한 뒤 등애에게 투항을 청하였다. 유선의 아들 유심은 싸워보지도 않고 수치스럽게 항복한 것을 한스러워하며 처자식을 죽이고 자살하였다. 등애가 성도에 도착하자 유선은 수레에 관을 싣고 스스로 몸을 묶은 채 그를 맞이하였다. 등애가 유선의 포박을 풀고 관을 불태운 뒤 회견하였다. 강유는 제갈첨이 격파되었을 때, 유선이 성도를 수비하거나 혹은 오로 도망하거나 혹 남쪽으로 도망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엇이 진실인지 몰라 동쪽으로 군을 이끌며 진상을 파악하려 하였다. 유선이 강유에게 사자를 보내 종회에게 항복하도록 하자 강유는 무기와 갑옷을 버리고 투항하였다. 그러자 장졸들 중에서는 분한 마음에 칼을 뽑아 돌을 내려치는 자들도 있었다. 강유는 종회와 가까이하며 소란한 상태를 만들어 종회와 수하들을 처리하고 다시 병권을 잡아 촉한을 부흥시키려는 계획을 하였으나, 종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종회와 함께 혼란한 도중에 죽임을 당한다. 유선은 전 가족이 위로 옮겨져 안락현공에 봉해졌으니, 이로써 촉이 멸망하였다. 유선은 271년 낙양에서 65세의 나이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