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제
은경제의 시작
중국 역대 왕조는 동전만을 법정화폐로 고정했다.지배층이 금 • 은을 독점하고, 잇따라 장식물로 했기 때문이다. 유통경제가 확대됨에 따라 동전만으로는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지폐에 의지했었고 은이 일반화 되어도 중량을 재서 그 교환 가치를 헤아려 쓰는 칭량화폐가 되어버렸다. 명대부터 세의 은납이 일어났어도, 농민은 생산물을 팔아 납세에 필요한 은을 사서 납세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동전의 테두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상공업이 번성해지면서 상인과 민중의 손에도 약간 건너오게 된다. 이것은 도시의 민중도 마찬가지 이지만 명 • 청 사이에 도시 • 농촌을 통하여 민중생활 중에서도 은이 비축만이 아니라 유통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여 동전과 은 사이에 시세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칭량화폐로서의 은
민중들의 손으로 들어온 은의 형태는 분동형으로 원보은(元寶銀)이라고 통칭하였다. 그 주조법에서 분동형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양측에 귀라 불리는 것이 만들어져 청대의 마제은(馬蹄銀)이 되었다. 마제은은 대체로 3종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대(大)는 무게 50량 전후로 원보은이라 하고, 중(中)은 10량 전후로 마제형의 것은 소원보(小元寶), 그외 원추형의 것 등은 중정(中錠)이라 하고, 소(小)는 3량 전후 과자(錁子)라는 마제형이 있다. 이것은 모두 그 품질과 중량을 헤아려 거래하는 칭량화폐였다. 품질은 천분의 일의 시금석으로 검사했지만 중량은 지방에 따라 도량형기가 달라, 그 환산에도 매우 번거로웠다. 그 때문에 청대 중국을 여행했던 외국인은 그 성가심에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마제은을 주조하는 노방을 비롯하여 교환을 취급하는 은장 • 전포 등 많은 전문점이 생기고, 그 번잡함을 영업수단으로 했다. 명조에는 스페인 멕시코 은화가 홍수처럼 유입되고, 게다가 그것이 그대로 통화가 되지 않았던 것은 전문점이 개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