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
이연(고조, 565~635)
이연의 자는 숙덕(叔德)이고, 농서 성기 출신이다. 이병이 일찍 죽어 세습직인 당국공은 7세의 이연에게 계승되었다.
이연의 집안
농서 이씨. 이연의 조부 이호는 선비족 출신 무장으로 북주의 우문태를 도운 개국 공신인 8주국 중 한명으로 죽은 후에 당국공으로 추모되었다. 이연의 부 이병은 8주국의 일인자인 독고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이 여인은 이연의 모친이고, 수 문제 양견의 독고황후의 언니이다. 즉 이연과 양제는 이종사촌의 관계인 것이다. 또 이연의 처 두씨는 우문태의 외손녀였다. 결국 당왕실도 수왕실처럼 북조계 문벌귀족인 관롱 집단의 일원이었고, 호족이거나 아니면 호화된 한인 출신이었다.
이연의 당 건국
농민반란에서 시작된 수말의 쟁란은 군웅쟁패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연은 차남 이세민과 부하 유문정(劉文靜) 등의 종용으로 수나라를 타도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617년 산서 태원의 지방관에서 자립해 거병한 이연의 군대는 황제인 양광을 제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황태손인 양유를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며 수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했다. 이연은 먼저 양제의 손자로 13세 된 유를 공제로 옹립했지만 양제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618년 양광은 자신이 믿었던 부하인 우문화급에게 암살당한다. 이에 이연은 618년 5월에 양유에게 선양을 받아 당조를 세웠다. 국호는 ‘당’이라 하고 연호는 ‘무덕’을 사용했다.
새 황조 건립 후 반란세력이 아주 많았다. 이에 이연은 이세민에게 반란세력을 제거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세민은 한 번도 지지 않고, 반란군을 격파하여, 이연은 이세민에게 천책상장(天策上將)이란 별호를 내려주었다. 그러나 개국에 노고가 많고 공적이 뛰어난 차남 이세민에 대해, 이연은 그의 위세와 명성이 날로 드높아지자 그를 더욱 의심하고 시기하였으며, 이건성 등이 그를 음해하려는 계획을 묵인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아 여전히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결국 626년, 기세가 오른 이세민은 자신의 인기가 황태자 이건성(李建成)을 능가하자, 계획을 짜고 황궁의 현무문에서 그와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을 죽여버린다. 이것이 '현무문의 변'이다.
당 고조 이연은 이 사건이 있고 나서, 3일 뒤에 황태자에 이세민을 봉하고, 2개월 뒤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상징적 존재인 태상황(太上皇)이 되었다. 635년 6월 25일에, 자신의 황궁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