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묵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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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B.C 476? |
사망 |
B.C390? |
생존시기 | 춘추시대 말기~전국시대 초기 |
관련 활동 | 묵가학파 |
묵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이 적(翟)이며 노(魯)나라 사람이다. 묵자는 대략 공자가 세상을 떠난지 10여년 뒤인 주(周) 정정왕 초, 즉 기원전 468~459년 사이에 태어났다. 그리고 맹자가 태어나기 10년 전인 주 안왕 중엽, 즉 기원전 390~382년 사이에 80세의 전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묵가학파의 창시자이자 전국시대의 저명한 사상가,교육가,과학자,군사가이다.묵자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농민출신의 철학가이며 그의 사상은 선진(先秦)시기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유가와 함께 '현학(顯學)'이라고 불렸다. 묵자가 설립한 묵가 학파와 공자가 설립한 유가학파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에서도 제일 이름을 떨친 학파이다. 또한 마오저뚱은 '묵자는 노동자로서 비록 관리직에 있진 않았으나 공자보다 현명한 성인이다.'라고 말했다.
묵자의 학설과 사상
<한서.예문지>에 따르면 묵자는 <묵자>71편을 남겼다. 그러나 18편이 사라지고 지금은 53편만 전해지고 있다. 그중 묵자의 학설과 사상을 가장 잘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겸애(兼愛)>,<비공(非攻)>,<상현(尙賢)>,<상동(尙同)>,<천지(天志)>,<명귀(明鬼)>,<비명(非命)>,<비악(非樂)>,<절장(節葬)>,<절용(節用)>,<경설(經說)>,<대취(大取)>,<소취(小取)> 등이다. 그 외의 대부분은 묵가의 제자들의 저작이다. 그 가운데 <경(經)>,<경설(經說)>,<대취(大取)>,<소취(小取)>는 논쟁에 대해 다룬 서적으로 유명하다. 이 저작들은 전국시대 말기에 완성되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인간의 인식론과 논리학 등의 문제를 위주로 토론한 것이다.
겸애(兼愛)와 비공(非攻)
겸애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모욕하며, 귀한자가 천한자를 무시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였다. 때문에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은 '만민에게 이로운 일을 발전시키고 해가 되는 일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천지(天志)와 명귀(明鬼)
하늘의 뜻을 살피고 귀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묵가학설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묵자는 하늘은 의지가 있어서 자연계의 별들과 사계절, 춥고 더움 등의 운동과 변화가 인간세상의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이처럼 사랑하기에', 임금이 만일 하늘의 뜻을 어기면 천벌을 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묵자는 귀신의 존재를 믹었으며, 귀신이 인간세상의 임금과 귀족들에게 선악에 따라 상벌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상동(尙同)과 상현(尙賢)
'상동'은 백성이 천자를 높이 받들며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묵자는, 임금은 현명한 자로서 백성은 군주가 맞다고 하면 맞다고 여기고 그르다고 하면 그르다고 여겨 윗사람에 동조해야 한다고 햇다. 어울러 이금이 벡성의 민정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며 그렇게 해야 선악에 따라 상벌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상현'은 임금이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고 무능한 사람을 강등시키는 것을 말한다. 묵자는 상현을 중시하여 이를 정사의 근본으로 여겼다. 그는 혈통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반대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그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등용해야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관리에게 영원한 고귀함이란 없고, 백성에게 영원한 미천함이란 없다'는 주장을 내세워 재능만 있으면 출신에 관계없이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관직에 오를 수 있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백성이 그들의 사상을 인정하고 상사를 따라 배워야 하며, 하급관리는 상급관리를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용
절약과 절용은 묵가가 특히 강조하는 관점 중 하나로, 그들은 임금과 귀족들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을 규탄하였고, 특히 유가가 중시하는 후장(厚葬)풍속을 반대했다. 그들은 임금과 귀족은 소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묵자의 제자들은 이 방면에서 솔선수범하여 '농사'를 중시하고 '절용'을 주장하여 생산을 중시하고 절약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