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제의 한화정책의 일환으로 관제개혁은 493년, 495년, 498~499년 3차에 걸쳐 행해졌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기원전부터 검증된 한풍(漢風)의 관제는 다수의 한인을 지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시대의 유풍은 쉽사리 없애기 어려웠다. 효문제는 낙양천도 시기에 관제정비를 3차례 고친 끝에 남조와 비슷한 관제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