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号门
감독 | 吕班 |
배우 | 郭振清、李紫平、李晓功、谢添 |
상영연도 | 1952 |
제작 | 东北电影制片厂 |
영화는 해방 직전 톈진 6호문(六号门) 화물 하치장이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억압했다가 해방 후 마침내 체포돼 법정으로 끌려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1948년 동북이 모두 해방된 후 국민당 통치하의 화북 한 도시의 물가가 폭등했다. 국민당 통치자는 운반업 현장 책임자인 마바베이(马八辈)와 그의 아들 마진룽(马金龙)과 결탁하여 대량의 물자를 국외로 반출하려 하고, 마바베이 부자도 기회를 틈타 한 몫 챙기려고 더욱 잔혹하게 노동자를 착취하여 6호문(六号门) 운송 노동자의 임금을 압류하였다. 근로자들은 16일째 품삯을 받지 못해 솥을 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배가 곯은채 뙤약볕 아래서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 후얼(胡二)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고, 그의 아들은 땅에 새는 곡식을 주워 마진룽의 졸개에게 맞아 죽었다. 후얼이 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려 했으나 노동자 딩잔위안(丁占元)이 그를 막았다.노동자들은 밥 한 그릇을 벌어 먹고 살아 나갈려면 반드시 전체 노동자가 한 마음으로 단결해야 하고 봉건적인 현장 책임자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이미 의식하고 있었다. 모두가 잔위안, 후얼, 리쥔화(李俊华), 류빈(刘斌) 등을 대표로 선출하여 투쟁 전략과 절차를 결정했다. 공산당원 잔위안이 상황을 지하 조직 지도자이자 자전거 점포를 운영하는 라오왕(老王)에게 보고해주었고, 당의 지시를 받아 노동자의 투쟁은 더욱더 단호해졌다. 마바베이의 칠순 생일을 축하할때, 딩잔위안, 후얼, 리쥔화 세 사람이 축수를 빌미로 연회장을 시끌벅적하게 하고, 현장 책임자가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이후 현장 책임자는 임금을 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이 국민당 반동파에게 철수된 물자를 싣어주도록 강요했다. 6호문의 노동자 연합 전체 시의 운송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벌이며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마진룽은 특수 공작원 졸개를 보내 후얼을 체포해 투옥시켰다. 해방 후, 후얼은 출소하여 딩잔위안 등과 만났다. 마진룽은 후얼과 류빈을 매수하려다 되레 질책을 받았다. 후얼은 운송업 노동자 서비스센터의 센터장으로 뽑혔고, 딩잔위안은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었다. 마바베이는 노동자 서비스 센터와 필사적으로 싸우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마씨 부자는 법률에 따라 엄벌에 처하고 노동자들은 신이 나서 즐겁게 일하였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85%AD%E5%8F%B7%E9%97%A8/4553372?fr=aladdin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_5YhR_rk0F4